[미디어펜=박준모 기자, 권동현 기자]더불어민주당이 정기국회 핵심 입법 과제로 형법상 배임죄 전면 폐지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동시에 꺼내 들었다. 이에 대해 국민의 힘이 반발하면서 여야 갈등이 심화되는 분위기다.
이로 인해 재계가 추진을 기대했던 관련 법안들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배임죄 관련 논의는 물론 산업 현장을 뒷받침할 법안들도 여야 갈등에 국회 통과가 지체될 전망이다. 재계 내에서는 산업 현장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산업 지원 법안에 대해서는 빠른 처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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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동시에 형법상 배임죄 폐지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제형벌 합리화 약속을 지키겠다. 연내 배임죄를 폐지하겠다”며 “배임죄가 분명히 문제가 있고 폐지해야 되는 것이 원칙이다.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배임죄의 모호성과 남용 가능성을 지적하며, 국제 기준에 맞춘 형벌 체계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이재명 정부의 ‘경제형벌 합리화’ 방향에 맞춰 수사기관에 의해 악용 소지가 있는 배임죄를 아예 폐지하고 민사책임을 강화하는 식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겠다면서 배임죄를 없애는 건 모순이라며 기업 책임 기준 자체를 무너뜨린다며 즉각 반발했다.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경영진의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상법을 개정해놓고 경영진의 충실의무 위반 행위인 배임죄를 폐지하겠다고 한다”며 “이재명 구하기 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배임죄 폐지는 기업을 위한 게 아니라 기업 오너와 경영진을 위한 면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적 공방에 배임죄 완화 기대감도 ‘뚝’
재계는 그동안 꾸준하게 배임죄 완화를 주장해왔다. 회사의 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경영 판단의 자율성이 위축되고 기업인들이 형사처벌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상법 개정안에 대한 보완책으로 배임죄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투자로 인한 단기적인 손실이나 결과만으로 배임 여부를 판단하기보다는 충분한 검토와 절차를 거쳐 경영상 판단한 것이라면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임죄 완화에 대해서 여야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재계의 기대감이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 추진에 대해 국민의힘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이견이 커지고 있다. 여야가 배임죄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에 들어가면서 배임죄 관련 논의는 다시 정치적 공방 속에 갇힌 상황이다.
이에 배임죄 완화 혹은 폐지가 이뤄지기까지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배임죄 폐지에 대한 의견 조율이 필요하고, 정치권 전반의 입장 차까지 고려하면 재계가 요구하는 실질적인 법 개정까지는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등 기업을 옥죄는 법안들이 연이어 국회 문턱을 넘은 만큼 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도 필요하다”라며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는 이미 시행된 만큼 배임죄에 대한 현실을 반영한 합리적인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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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여야 갈등에도 산업 지원 법안은 조속 처리해야
산업 지원 법안도 여야 갈등으로 인해 국회 통과가 지연되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철강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K-스틸법이 정쟁 여파로 이달 정기국회 통과도 사실상 무산된 상황이다.
K-스틸법에는 재정·세제 지원, 녹색 철강기술 개발·전환 지원, 규제 혁신 등이 담겼다. 글로벌 철강 수요 감소와 미국의 철강 관세 등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법안이다.
여야가 법안을 공동발의하면서 위기의 철강 산업을 살리자는 데 뜻을 모았다. 지난 8월 임시국회 통과를 목표로 했으나 여야 갈등으로 인해 처리가 지체되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팽팽히 맞서면서 다른 법안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국민의힘은 쟁점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진행 중이며, 이로 인해 다른 민생법안들도 통과도 난항을 겪고 있다.
결국 재계 내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한시가 급한 산업 지원 법안까지도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K-스틸법뿐만 아니라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처리도 시급하다.
특별법은 사업 재편을 촉진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과 전기요금 감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석유화학 기업들이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특별법의 조속한 처리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산업 지원 법안은 통과 시기가 늦어질수록 기업들의 경영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라며 “꼭 필요한 법안에 대해서는 여야가 정치적 입장을 내려놓고 신속히 협력해주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민주당은 자사주 소각 의무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도 추진한다. 민주당 내에서는 자사주 소각 시점을 둘러싼 유예기간, 법안 실효성 등 다양한 쟁점이 제기되면서 의견 조율이 길어지고 있다. 현재 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에서는 발의된 복수의 법안들을 단일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며 늦으면 내년 초로 본회의 표결이 미뤄질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도 3차 상법 개정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그는 25일(현지시각) 오전 미국 뉴욕 월가의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대한민국 투자 서밋’을 열고 “3차 상법 개정을 하고 있다”며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야될 일이기 때문에 실제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계 내에서는 최후의 방어수단이 자사주마저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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