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재훈 기자]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일본과 유럽연합(EU)에 부과한 의약품 관세와 국내 제약사에 적용된 관세 간 격차가 커지면서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정책 변화는 바이오의약품보다는 의약품 완제품을 중심으로 미국에 수출해온 국내 제약사들의 타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
 |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
2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의 국가별 차등 관세로 인해 국내 제약사들의 단기적인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수의 국내 제약사는 미국 현지에서 직접 판매망을 운영하기보다는 현지 파트너사와의 협력 체계를 통해 제품을 공급해왔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한국산 의약품에 대해 최대 100% 관세를 부과할 경우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관세 부담이 높아지면 현지 파트너사들이 계약 조건 조정을 요구하거나 판매 단가를 인상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파트너사와의 계약 변경은 수치에 따라 고스란히 국내 제약사들의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0월1일부로 “이미 미국 내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했거나 착공을 진행 중인 기업은 관세에서 제외된다”고 밝혔으나 즉각적인 투자도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은 투자와 함께 정부 협상력을 통해 대응 수위를 낮추고 있다. 스위스계 다국적 제약사인 로슈와 노바티스는 이미 미국 내 설비 투자와 고용 확대를 확약하며 현지 정부로부터 우호적인 대우를 확보했다. 로슈는 500억 달러의 미국 현지 투자 의사를 백악관을 통해 전달한 상태다.
더불어 미국과 일본·EU 간 협정에 따라 최혜국 대우를 받게 되면서 관세 부담이 사실상 경감됐다. 이에 따라 국내 제약사들과의 경쟁 격차는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또한 글로벌 제약사들은 미국 시장에서의 안정적 지위를 발판 삼아 연구개발(R&D) 투자와 파이프라인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미 면역항암제, 희귀질환 치료제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강점을 확보한 상태로 관세 장벽까지 낮아지면 한국 제약사의 입지는 더욱 위축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분야일수록 국내 제약사의 시장 점유율 방어가 어렵다”며 “미국 내 생산 기반을 갖추지 못한 기업일수록 피해 폭이 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경우 미국으로 투자를 감행해 선제적인 조치에 들어갔지만 전통제약사들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우선 미국 내 생산설비 신축에 필요한 기간이 최소 2년이며 비용도 상당해 투자 결정을 내리고 진행하기 어렵다. 설비 인수 방식도 수익성 측면에서는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
|
 |
|
▲ 화이자 로고./사진=연합뉴스 |
가장 주된 이유는 체급의 한계다. 국내 전통 제약사들은 글로벌 빅파마 대비 매출 규모가 작아 체급의 한계가 있으며 경쟁을 위한 R&D 투자 여력도 부족한 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변동이 크다는 점도 투자 불안감을 높이는 요소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한국 제약업계가 기존의 대미 수출 중심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의존도를 과도하게 높인 전략에서 벗어나 중남미, 동남아, 중동 등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신흥 시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중남미 국가들은 고령화 진입과 함께 건강보험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의약품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동남아 시장 역시 의약 인프라 확대와 함께 글로벌 제약사들의 신흥 투자처로 주목받는 상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관세 논란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 전략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도 제언한다. 특정 지역, 특히 미국 의존도가 극단적으로 높은 수출구조는 언제든 정책 리스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 차원에서도 통상 협상력을 강화하고 국내 기업들이 해외 현지 생산거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제약사가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이라는 단일 시장에 올인하기보다는 다양한 수요 지역을 공략해 위험을 분산하는 전략적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글로벌 제약시장 규모는 약 1조6068억 달러로 신흥국 시장 규모는 약 3037억 달러(18.9%)를 기록했다. 신흥국 시장 규모는 오는 2028년 약 4300억 달러(19.07%)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