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포함 및 ‘남북 두 국가론’ 놓고 자주파 불만 표출…엇갈린 주장 이어져
“목표만 있지 들어갈 입구, 방법이 없다”…“큰 세가지 좌표 제시에 논란 이상해”
늘 북한 문제에서 남남갈등이 발목잡기...트럼프 2기, 기회일 수 있지만 과제 안겨
한미 관세협상 교착 국면에 ‘트럼프의 불신’ 대응 위해 초당적 협력 구할 노력 필요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이재명 대통령이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대북정책인 'END'(교류·관계정상화· 비핵화) 이니셔티브를 내놓자 ‘자주파’의 불만이 노골화됐다. 남북관계를 더 중시하는 자주파 사이에서 “동맹파가 대통령의 앞길을 막는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고, 위 실장은 이후 ‘비핵화’와 ‘남북 두 국가론’과 같은 갈등 이슈에 대한 답변을 내놓아야 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나 또 다른 정부 고귀관계자 등과 말이 엇갈리면서 갈등설은 커져갔다.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주최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세미나에 참석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금 정부에 ‘동맹파’들이 너무 많다”며 “대통령을 끝장낼 일 있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대통령 주변에 소위 자주파가 있으면 앞으로 나가는데, 동맹파가 지근거리에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했다. 

동맹파는 한미동맹을 더 중시하는 인사들을 지칭하는데, 위성락 실장처럼 외교관 출신들이 속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외교라인 인선을 발표하자 외교가에선 “동맹파와 자주파가 동거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을 두고 한 말이다.

자주파의 불만은 END 즉 ‘교류(Exchange), 관계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에 포함된 비핵화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은 “멋있는 글자를 만들어서 홍보하던데, 비핵화 이야기를 거기에 왜 넣느냐”며 “이렇게 되면 ‘문재인정부 시즌2’가 된다. 문 전 대통령은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 군사 분야 합의 등 좋은 것을 다 만들어 놓고도 한미 워킹그룹에 발이 묶여서 아무것도 못 했다”고 비판했다.

위 안보실장은 29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제가 무슨 파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제가 하는 일은 지금 주어진 여건에서 최적의 일이 뭔가, 그걸 선택하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국내에서 나오는 강경 발언이 대미 관세협상에 일종의 지렛대가 될 수 있냐’는 질문에 “레버리지(지렛대)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미국과 협상이 상당히 첨예한 상황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가 가용할 카드를 이용하되 ‘오버 플레이’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자주파에 맞서는 발언도 내놓았다. 

최근 국내 자주파와 동맹파 간 이견은 END 이니셔티브 외에도 북한이 주장하는 ‘남북 두 국가론’에서도 표출됐다. 위 안보실장은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END 구상의 ’관계정상화‘가 ’남북 두 국가론‘을 인정하는 의미냐’란 취재진 질문에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동영 장관은 같은 날 국내 기자간담회에서 “남북은 사실상 이미 두 국가”라고 정의하면서 “잠정적으로 통일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생긴 특수관계 속에서 국가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두 국가’는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이지 영구 분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북 및 외교 전략에서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립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표방한 실용외교를 국내 갈등으로 인해 시험대에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5.8.26./사진=연합뉴스

위 안보실장은 그동안 “미국이 3시, 중국이 9시면, 한국의 외교 좌표는 ‘1시 반’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미중 사이에 균형을 강조해왔다. 반면 현재 남북대화 전망이나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계기 북미 대화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정세현 전 장관이나 또 다른 정부 고위관계자가 “경주 APEC 계기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 것과 대비되는 의견을 낸 것이다. 

국내 자주파의 목소리는 트럼프 2기를 맞아 상대적로 기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적극 활용하자는 촉구의 일환일 수 있다. 특히 END 구상에서 ‘비핵화’를 빼자는 주장은 대화 테이블부터 서둘러 마련하자는 목소리로 해석된다. 정세현 전 장관이 “교류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정상화는 어디 입구로 들어갈 것인가, 비핵화의 입구는 무엇인가, 입구 얘기가 없다”고 지적한 이유다. 반면, 위 실장은 END 구상에 대해 “연결된 로드맵이 아니라 목표다. 시계열적 순서가 아니라 큰 좌표, 목표만 3개이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금 동맹파와 자주파의 갈등에 대해 “양측의 주장은 결국 같은 말”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사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남북 문제에 핵문제까지 있는 상황이 그만큼 복잡하고 해법도 다양할 수 있는데, 결국 궁극적 목표는 비핵화와 통일에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화해와 교류를 먼저 할지, 비핵화 추구를 우선으로 할지 방법은 확연히 다른데, 그것도 지난 진보와 보수 정권이 번갈아가며 정책을 달리해봤지만 모두 실패한 셈이어서 정답은 없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 일각에선 정부가 비핵화 메시지를 뺄 수는 없고, 특히 트럼프 미국 정부 시기 비핵화 메시지를 약화시킬 경우 자칫 북미 간 핵군축 협상으로 이어져서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는 지적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비핵화와 관련해 우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의 ‘중단’을 목표로 제시했다. 따라서 END의 ‘비핵화’는 목표일 뿐이고, 북한으로서도 보상이 충분하다면 중단하지 못할 게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북한 문제를 놓고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이 소모적이지 않으려면 각각 다른 생각에서 접점을 찾아 한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늘 북한 문제에서 진보-보수, 자주파-동맹파 간 소위 남남갈등이 발목을 잡아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에 대통령실이 END의 큰 좌표만 제시한 것도 현 정세나 국내 반대파의 반발을 의식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이라면 문제다.  

지금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북한 문제에선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관세협상과 주한미군 역할 변화 등에서 많은 과제를 안기고 있다. 또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SNS에서 올린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 이란 글을 올리고, 자신을 형사기소한 미 특검 잭 스미스를 언급한 것은 한미 정상간 신뢰 문제에 적신호를 시사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특검수사 관련 설명을 듣고 “오해가 있었다”고 했지만 동맹의 위기는 이미 불거졌다. 그래서 특히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결실을 얻기 위해선 국내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부터 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