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밥상이 떫은 감 마냥 끝났다. 언제나 어떤 화두가 오를까가 정치권의 오랜 관심사였지만 안방의 이슈를 집어 삼킨 건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JTBC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냉부해)'와 KBS의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콘서트였다. 하나는 논란으로, 하나는 경외심으로.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한 JTBC 예능 '냉부해' 시청률은 방송 10년 만에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시청률 조사 회사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6일 방영된 '냉부해' 본 방송 시청률은 전국 기준 8.9%를 기록했다. 2014년 첫방 이후 시즌 1, 2를 통틀어 역대 최고 시청률이다. 조용필 콘서트는 15.7%였다. 3~4%만 나와도 성공이라는 요즘 TV 시청률치고는 놀라운 수치다.

   
▲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 내외가 출연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 영상.

냉부해는 이재명 대통령 부부의 취임 후 첫 예능 출연으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당시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의 화재로 행정서비스에 중대한 지장이 있었던 시점이었다. 뿐만아니라 전산망 담당팀을 총괄하던 행정안전부 공무원이 투신 자살한 3일 후였다. 어찌어찌해 방송을 하루 연기해 전파를 탔지만 여론은 녹록치 않았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추석이 지나 열리고 있는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이슈로 조명되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 논란과 함께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민생과 거리가 먼 예능 출연 이슈가 정치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애초 대통령실은 찍지 않았다며 날을 세웠다. 이후 찍은 것으로 번복되고 그 과정에서 정치권은 물고 뜯는 아수라장이 됐다. 

여론의 따가움을 의식한 것일까. 이재명 대통령은 추석 다음 날인 7일 "때로는 간과 쓸개를 다 내어주고 손가락질과 오해를 감수하더라도 국민의 삶에 한 줌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SNS에 메시지를 남겼다.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였다. 변명의 구차함은 K-푸드 홍보 운운의 어이없는 핑계로 옮겨졌다. 국민은 안다. 냉부해는 K-푸드를 홍보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란 것을. K-푸드와는 거리가 먼 예능프로다. 이해 불가는 여기까지가 아니다. 대통령의 냉장고는 일반적이지 않다. 그걸 국민이 모를까. 어이없는 헛발질이다. 시청률에서는 선방했다고 자위할지 모르지만 쏟아지는 비난에 비할 바는 아니다. 사라진 댓글 의혹 또한 논란이다.

이 대통령과 부인 김혜경 여사는 K-푸드를 홍보하기 위해 예능 출연을 결심했다며 냉장고 공개 대신 한우와 시래기, 더덕, 무 등 우리 제철 식재료를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K팝이나 드라마 같은 문화도 중요하지만, 진짜 문화의 핵심은 음식"이라며 "한국 문화를 수출하는 데 있어 음식은 산업적으로도 대한민국을 키우는 큰 힘이 된다"라는 말까지 했다.

이날 잣을 이용해 만든 타락죽 '아자아잣', 시래기를 활용해 만든 '이재명 피자' 등이 유명 셰프의 손아래 만들어졌다. 이게 K-푸드일까? 피자에 시래기를 얹고 일반인은 따라 하기 힘든 잣을 이용한 옛날 임금이나 먹었던 타락죽. 아닐 것이다. K-푸드의 힘은 김치도 있지만 김밥과 라면 등 일상속의 음식이다.   

   
▲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진=넷플릭스 제공

냉부해의 제작 의도와 거리가 있는 어줍잖은 변명이 세계적으로 흥행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를 다시 소환했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케데헌이 역대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다"고 했다. 

"1억 달러(약 1429억 원) 정도를 투자해서 만든 건데, 지금 소니픽처스의 수익은 10억 달러가 예상된다"며 "훨씬 많은 수익이 날 것 같다. 10배를 넘어 수십 배의 수익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이 의원은 케데헌 방영 이후인 7~8월 CU에서 해외 결제 수단을 이용한 건수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5% 늘었다고 했다. 

케데헌에서 김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 이후 7~8월 CU 편의점 김밥 매출이 전년과 비교해 231% 급증했다. 케데헌과 협업 제품을 내놓은 농심홀딩스의 경우 주가가 30%나 뛰었다. 케데헌 효과로 외국인 관광객도 늘고 있다. 이 의원은 "올해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이 원래는 1700만 명을 예상했는데, 2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며 전년 대비 48.4%가 늘어났다고 했다. K-문화의 힘이다. 

앞서 '오징어 게임'도 있었다. K-푸드와 K-문화를 전파하려 한다면 이런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시래기 얹은 피자와 잣으로 만든 타락죽을 외국인들이 얼마나 찾을까? 기대한다면 넌센스고 그걸 알면서도 이런 말을 했다면 K-푸드와 K-문화를 만들어 가는 이들에게 상처다. 냉부해와 케데헌의 분명한 차이다. 

봉숭아 학당보다도 못한 욕설과 고함과 삿대질이 난무하는 절망적인 국회의 싸움박질은 국민을 분노조절 장애로 내몰고 있다. 차분히 돌아보자. 조용하지만 입소문으로 세계인의 눈길을 잡은 또 하나의 드라마가 있다. 넷플릭스에 보인 15부작 시리즈 '은중과 상연'이다. 존엄사라는 묵직한 주제를 던진다.  

이재명 대통령은 얼마 전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자가 여자를 미워하는 것은 이해한다"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이른바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성차별적 인식이 비판에 올랐다. 젠더 인식의 이해 부족과 단선적이라는 화살이 쏟아졌다. 

'은중과 상연'도 얼핏 스치면 여적여로 읽힐 만한다. 배신과 우정의 고리로 이어져 온 30년은 갈등의 연속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던지는 주제는 꽤나 무겁고 울림이 있다. 친구 관계인 은중(김고은 분)과 상연(박지현 분)의 10대, 20대, 30대, 40대는 보통 사람들의 질투와 배신, 갈등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은중과 상연은 상대를 통해 자기 존재의 의미, 나아가 죽음까지 철학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상연은 은중에게 둘도 없던 친구이자 인생 최대의 걸림돌이자 훼방꾼이었다. 그런 상연이 말기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스위스로의 안락사 여정에 동행을 해 줄 것을 은중에게 부탁한다.

   
▲ '은중과 상연'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은중은 끝내 상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죽음 앞에 선 옛 친구에게 과거의 감정은 사치처럼 지나간 시간일 뿐이다. "미안해"를 연발하며 상연은 "아이가 한 번 그렇게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그렇게 돼 버리는 거야"라고 아팠던 과거를 고백한다. 상연의 말은 지금의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하나의 화두이기도 하다.  

"네가 멀쩡한 게 싫어. 망가졌으면 좋겠어 나처럼."(상연)/ "누가 끝내 널 받아주겠니."(은중). 이처럼 가시 돋친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관계의 울타리에서 밀어낸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마주했을 법한 꼬여버린 관계, 도저히 풀리지 않을 듯했던 관계는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 앞에 결국 화해의 손을 잡는다. 
 
죽음 앞이라면 여야는 정쟁을 끝내고 은중과 상연처럼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오늘도 여야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불확실 속에서 민생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서로 흠집 내기에 골몰하고 있다. 발등의 불인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오리무중이고 유럽에 이어 이제는 중국까지 제재에 나섰다. 코앞으로 다가온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준비도 첩첩산중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말기 암의 진통을 겪고 있다. 다수당의 횡포는 법치를 위협하고 제1 야당은 존재감이 없다. 고함과 삿대질에 민생은 실종됐다. 죽음 앞에 내몰린 정치다. 정치가 모든 것을 오염시키고 있다. 

'냉부해'는 지나쳤다. 더구나 K-푸드를 갖다 붙인 변명은 어불성설이다. 세계를 감동시킨 '케데헌'이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감동 없는 정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리고 이제라도 죽음 앞에서는 서로 화해하는 '은중과 상연'처럼 손을 내밀기를. 벼랑 끝으로 떨어지기 전에.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