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협상 타결을 위한 총력전이 펼쳐지는 모양새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먼저 워싱턴DC에 도착한 가운데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6일 워싱턴을 찾기 위해 출국했다.
APEC 계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한이 확정되면서 2차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양측 모두 관세협상 타결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29일 방한해 30일까지 1박2일 일정을 소화할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을 처음으로 밝혔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경제·통상 수장들이 워싱턴DC에 총집결한 계기로 한미 관세협상이 큰 진전을 보일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한미 간 주고받은 수정 대안이 3500억 달러 직접투자의 안전장치로 우리 측이 제시한 통화스와프 체결일 것이란 희망 섞인 관측도 제기됐다.
김 실장 등의 워싱턴 일정이 주목되는 이유는 김 실장과 김정관 장관이 워싱턴에 도착하는 대로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이곳에서 양측이 관세합의문의 행정 문구 조율 및 절차 사항을 점검하는 단계를 거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김 실장은 출국 직전 인천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이전엔 미국 내 관련 부처들이 긴밀하게 소통하는 인상을 안 보였는데, 이번에는 재무부와 상무부가 아주 긴밀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관세협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관 장관은 취재진으로부터 ‘원화 직접투자'나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에 관한 질문을 받고 즉답을 피하면서도 “외환시장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미국과 이해 간극이 좁혀졌다”고 했다.
구 부총리는 워싱턴 DC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현재 협상 상황을 “계속 빠른 속도로 서로 조율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도 유독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한 메시지가 잇달아 나왔다. 미국의 경제수장인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15일(현지시간) 기자들을 만나 “우리는 현재 논의 중이며, 앞으로 10일 내로 뭔가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어 이날 오전 CNBC 방송 대담에선 “우리는 한국과 (협상을) 마무리하려는 참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지만 우리는 디테일을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언론 앞에서 또 “한국이 3500억 달러를 선불로 내기로 합의했다”고 거듭 말했다.
관세협상이 교착국면에 빠지면서 우리 정부는 한미 통화스와프를 필요조건으로 강조해왔고, 관건은 미국의 수용 여부에 달려 있다.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직접투자할 경우 외환시장 안전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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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5.8.26./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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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이와 관련해 베선트 장관으로부터 우리가 다소 희망을 가질 수 있을 만한 발언이 나온 것이 사실이다. 그는 취재진의 관련 질문을 받고 “통화스와프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소관이지만, 내가 연준 의장이라면 한국은 이미 싱가포르처럼 통화스와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구 부총리도 최근 “미국이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아마 우리가 제안한 것에 대해 받아들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이 대규모 달러를 한꺼번에 투자할 경우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을 막을 최소한의 안전장치의 필요성에 한미 간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다만 위성락 안보실장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한미 통화스와프 협상에 진전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통화스와프는 우리가 제기한 적이 있고, 미국이 그것을 붙들고 있었는데 진전이 없었다”며 “이 문제에 새로운 진전이 있다고 알지 못한다”고 했다. 또 “통화스와프가 되더라도 필요조건일 뿐 다른 충분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인데, 그와 관련해 진전이 없다. 통화스와프 형태에 진전이 없고, 그래서 큰 의미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위 실장의 발언 이후 입장을 내고 “위 실장의 발언은 아직 양측이 합의하지 않았고 협의 중이라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실은 “한미 간 관세협상은 국익 최우선 원칙에 따라 주요 쟁점에 대해 이견을 좁혀 나가고 있다”며 “협상 중인 상황이기에 구체적으로 답을 드릴 수 없는 점에 이해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관세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변곡점을 맞은 것은 분명해보인다. 베선트 장관이 “10일 내로 뭔가를 기대한다”고 말한 것처럼 APEC 정상회의 전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될 경우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보다 좀 더 한미관계를 진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한미 관세협상은 지난 7월 말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대신,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합의한 뒤 세부 내용을 조율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직접투자 비율 확대를 요구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졌고, 한국이 양해각서(MOU) 수정안을 제시한 뒤 최근 미국이 역제안을 내놓으며 협상 분위기가 반전됐다.
다만 미국 측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의 투자액을 어떻게 조달·구성하고 집행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외환보유액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화 계좌를 통한 집행 방안 등이 거론되지만, 본질적으로는 원화와 달러를 맞바꾸는 통화스와프와 유사한 개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달러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통한 조달 방식도 논의되고 있으나, 국가부채인 만큼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이 때문에 결국 미국 측이 어느 수준의 한미 통화스와프를 수용할지가 관건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워싱턴DC에서 김 실장과 김정관 장관은 16일 미 측 협상을 진두지휘하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회담한다. 지난 15일 입국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협상을 이어간다. 구 부총리도 카운터파트인 베선트 장관과 만나 관세 문제를 협의할 계획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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