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사, 공사 지연 및 신뢰도 타격…일정 재조정 불가피
실무적 측면에서 접근…미국, 실무 협상서 협조적 자세 취할 수도
[미디어펜=박재훈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APEC 방한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최근 한국 배터리 업계가 겪은 미국 비자 사태의 충격과 대응책이 한미 정상 간 논의 의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내 산업계는 이번 회담이 단기적으로 공장 운영 리스크 완화와 더불어 중기적으로 제도 개선의 불씨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20일 업계에 따르면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 간 외교협상에 대한 업계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범정부 태스크포스(TF)는 배터리·자동차·조선·IT 등 미국 진출 기업의 현장 인력 파견을 위한 단기·특수직 비자 신설 방안을 논의 중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배터리 산업 등 미국 내 전문인력 부족 문제가 불거지고 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임시 비자 확대가 합리적 해법"이라는 지적이 부각되기도 했다.​

특히 최근 불거진 미국 내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대규모 불법체류 단속 사태는 국내 배터리 산업의 미국 현지 사업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조지아 공장에서만 30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체포 및 구금되며 공장 준공 일정과 신규 설비 가동이 지연됐고 긴급 기술 지원이나 장애 대응도 비자 문제로 제약을 받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현장근무 범위에 대한 비자 체계의 모호함이었다. B-1과 ESTA는 회의나 기술협의 목적의 출장 비자지만 실제 현장 장비 설치·시운전·품질점검 등 업무가 수반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당국은 이를 ‘불법 취업’으로 간주했고 한국 기업들은 막대한 공사 지연과 신뢰도 타격을 입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애리조나·조지아 등 7개 공장 중 4곳이 건설 중이며 특히 현대차와의 합작공장(HMGMA)은 일정이 수개월 늦춰졌다.​

삼성SDI와 SK온도 상황은 비슷하다. 미국 인디애나, 조지아, 켄터키주 공장들은 고도화된 배터리 공정 특성상 본사 기술 인력의 파견이 필수다. 하지만 비자 리스크로 인해 현장 인력공백과 공장 가동률 저하가 지속되고 있다. 삼성SDI는 GM(제너럴모터스)과의 합작법인 인디애나 공장 품질 인증이 지연됐으며 SK온도 켄터키 공장의 장비설치 단계에서 일정이 재조정됐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미국 배터리 공장은 한국 기술자들의 노하우가 필수적"이라며 한때 ‘이민단속 옹호’ 메시지에서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시운전 및 품질관리, 신공장 가동에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최근 사건 이후 단기 상용(B-1), ESTA 등 임시 비자 인력은 귀국 조치됐고 지연된 일정에 따른 수천 억 규모 매출 차질도 우려된다"고 말한다.​

   
▲ 미국 이민당국이 공개한 현대차-LG엔솔 이민단속 현장./사진=ICE 홈페이지 영상 캡처

국내 산업계 전체로도 비자사태는 대미 투자 및 현지 법인 운영의 리스크를 급격히 증가시켰다. 반도체·조선·철강·기계 업종 역시 미국 법인 운영에 필요한 단기 기술인력 파견이 위축됐고 출장 자체가 줄어든 탓에 현지 고객 지원 및 협력사 관리가 어려워졌다. 또한 비자 수수료 폭등, 심사 강화 등으로 파견비용과 행정 부담이 커지고 투자 심리도 위축됐으며 정부에는 단기비자 신설·쿼터 확대 등 근본적 제도개선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APEC 계기를 통해 배터리 산업처럼 기술 인력의 미국 파견이 꼭 필요한 분야에 단계적 완화 조치가 부분 발표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H-1B 등 전문직 비자제도의 근본적 틀 변화가 없으면 파견 인력 관리 및 현지공장 운영의 불확실성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외신들은 트럼프와 시진핑의 연쇄 방한과 APEC 정상회의가 ‘한미·한중·한일 등 다층 외교의 전환점’임과 동시에 한미 FTA 이후 최대의 한미 경제현안을 논의하는 장이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산업계도 한미간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미국 내 사업환경, 투자 속도, 글로벌 경쟁력 유지 여부가 좌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APEC 방한 외교의 실질적 성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진전이 있어야 될거라고 생각한다"며 "실무적인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향후 대미 투자에도 문제가 되지만 양측의 의지만 있으면 되는 해결이 가능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논의가 H-1B 비자를 요구하는 것이나 영주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실무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중요한 것은 빠른 합의로 대미 투자에 대한 우려를 해소해야하는 것이고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실무 TF 협상에서 미국도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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