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세 도입이 1년 가량 연기되면서 글로벌 해운·조선업계의 친환경 전환 속도가 일시적으로 지체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업계는 정책의 일시적 후퇴일 뿐 흐름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라며 냉정하게 시장을 바라보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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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오션이 건조한 200번째 LNG운반선인 SK해운社의 ‘레브레사(LEBRETHAH)’호 운항 모습./사진=한화오션 제공 |
2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IMO 해양환경보호위원회 특별회기에서 ‘넷제로(Net-Zero) 프레임워크’ 채택이 1년 연기됐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제출한 연기안에 과반인 57개국이 찬성하면서다. 이번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탄소 규제 기조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임기 중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하며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탄소 감축은 사기(Green Scam)”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에도 탄소세를 추진하는 국가들에 대해 “미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는 등 반탄소 정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이러한 흐름이 IMO 회의에서도 친환경 전환 속도 조절론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선박 발주 시장은 단기적으로 ‘눈치보기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제도 시행이 늦춰지면서 해운사들이 친환경 선대 확보를 잠시 미루거나 기존 화석연료 추진선 중심의 발주를 지속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번 연기는 어디까지나 일시적 완화일 뿐 대세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입을 모은다.
탄소세 이외에도 해운사들의 친환경 흐름을 재촉하는 규제들이 존재하면서다.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EU 내 운항 선박에 대해 탄소배출권 제출을 의무화했다. EU 탄소배출권거래제(EU ETS)는 단순한 ‘탄소세’가 아닌 배출권을 시장에서 거래해 감축 의무를 실질적으로 부과하는 제도다.
올해는 전체 배출량의 40%만 규제 대상이지만 2026년부터 100%로 확대된다. 이로 인해 연료 효율이 낮은 선박은 운영비가 급증하게 되고 효율적 연료 시스템을 보유한 선박만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IMO도 2027년부터 탄소강도지수(CII)의 기준을 단계적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등급이 낮은 선박은 운항 제한 또는 시장 퇴출 압박을 받게 된다. 이처럼 EU ETS와 IMO CII는 사실상 글로벌 해운의 ‘탈탄소 표준’으로 굳어지고 있어 미국의 일시적 완화가 조선·해운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되돌리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업계는 오히려 이번 연기 국면을 ‘기술 축적의 시간’으로 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 3사는 이미 LNG, 메탄올, 암모니아 이중연료 추진 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며 완전무탄소(Zero-Emission) 연료 전환 시대를 대비한 기술 개발을 지속 중이다.
HD현대중공업은 ‘암모니아 연료 엔진 실증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 중이며 삼성중공업은 메탄올 추진 시스템 상용화에 성공해 글로벌 발주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화오션은 암모니아 저장·공급 시스템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국제 인증을 획득하며 기술적 우위를 확보했다.
국내 조선사들은 이미 친환경 기술을 상용화 수준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에 규제 지연이 오히려 ‘경쟁국 대비 기술 격차를 더 벌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탄소세 시행이 늦어져도 친환경 전환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며 “국내 조선사들은 이미 기술 기반이 충분히 확보돼 있어 시장 변동성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본격화되면 해운사들은 연료 효율이 낮은 선박을 보유할수록 손해를 보게 되므로 장기적으로 친환경 선박 전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글로벌 해운사들의 움직임도 빠르다. 머스크(Maersk), CMA CGM, MSC 등 주요 해운사는 이미 메탄올 추진선 및 암모니아 추진선 발주를 잇따라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 HMM 최근 친환경 컨테이너선 12척 발주와 함께 암모니아 추진선 공동 개발을 추진 중이다.
팬오션, 고려해운 등도 향후 LNG 및 메탄올 추진선을 중심으로 친환경 선대 전환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결국 이번 IMO 탄소세 연기는 조선업계에 ‘시간을 번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규제 공백기에 기술을 더 고도화하고, 친환경 설비·엔진·연료 공급망을 미리 확보한 기업이 장기 경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탈탄소 전환의 대세는 이미 굳어졌다”며 “조선사들 역시 이번 유예 기간을 기술 고도화의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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