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세계 경기 둔화와 미국·EU발 보호무역 기조 속에서 국내 철강산업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4일 한국철강협회가 주관한 ‘스틸코리아 2025’에서는 업계와 학계가 내년도 철강 수요와 수출 환경을 진단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산업 혁신 전략을 논의했다.
| |
 |
|
| ▲ 권남훈 산업연구원 원장이 세션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이용현 기자 |
이번 포럼에서는 세계화 흐름의 약화와 보호무역주의 확산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최근 주요 선진국들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도입하면서 글로벌 무역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이경호 한국철강협회 상근부회장은 “최근 한국의 철강산업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잇단 관세 강화와 글로벌 수요 둔화 등으로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며 “여기에 국내 건설경기 부진까지 겹치며 내수시장 회복도 더딘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불확실성이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미국발 관세 여파 지속…철강 수출 10~16% 감소 전망
이 부회장은 급변하는 대외 환경 속에서 한국 역시 산업정책의 방향성을 새롭게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소재산업 중심의 경쟁력 확보가 국가 산업 전반의 안정성에 직결된다는 것이다.
물론 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최근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지만 철강 부문에서는 기존 50% 수준의 쿼터 제한이 그대로 유지됐다. 세계철강협회(WorldSteel)에 따르면 이 영향으로 한국의 대미 수출은 철강을 포함한 제조업 전반에서 10~16%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와 제조업 부활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중국을 중심으로 한 산업보조금 정책 강화도 계속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글로벌 철강 교역 환경의 불확실성은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국내 철강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경기가 장기 침체 국면에 머물면서 내수 회복도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 후방산업도 불확실성 여전…자동차·조선·건설 모두 변수 많아
후방산업 전반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올해 미국 판매량이 1610만 대로 기존 전망치(1520만 대)를 웃돌았지만, 이는 관세 도입 전 ‘선(先)수요’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전기차 세액공제 종료로 EV(전기차) 수요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자동차용 강판 수요도 완만한 감소세가 불가피하다.
다만 유럽에서는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HEV)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전기차 대비 합리적인 가격과 연비 효율을 모두 확보할 수 있어 소비자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HEV 시장에서 고장력강(Advanced High Strength Steel·AHSS) 등 경량화용 특수강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HEV용 고강도 강판 기술력을 선점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자동차용 철강 수출의 버팀목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선업은 긍정적인 흐름을 보인다. 한국은 코로나19 이후 LNG운반선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중심으로 수주량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한국의 누적 선박 수주는 약 950만 CGT로, 세계 시장의 32%를 차지했다.
특히 2026~2027년에는 LNG·암모니아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가스선이 시장을 주도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극저온 탱크 수요가 증가하면서 조선용 후판·특수강 시장은 철강산업의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반면 건설업은 여전히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축허가는 10년 평균 대비 18.1%, 건축착공은 16% 감소하며 물량 기준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건설 취업자는 전년 대비 약 14만 명 줄었으며, 철근·형강 등 주요 자재가격이 안정세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공사비는 코로나19 이후 30% 이상 상승한 상태다. 이에 따라 봉형강(봉강·형강) 등 건설용 철강재의 가시적 수요 회복은 내년에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26 K-철강, 신흥국과 고부가제품이 핵심 변수 될 것
이에 전문가들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역시 후방 산업 경기 부진과 수출 규제라는 유사한 구조적 한계를 겪고 있다며 한국 철강산업의 수출 시장 다변화가 시급한 과제라고 진단했다. 특히 중남미·동남아를 비롯해 인도·아프리카 등 신흥시장 중심의 유통망 확대와 현지화 전략이 향후 성장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인도의 경우 이미 세계 2위 철강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 급부상하며 중국의 부진을 일부 대체할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아프리카 시장은 아직 인당 철강 소비량이 30kg 수준에 불과하지만, 인프라 투자와 도시화가 본격화될 경우 중장기적 수요 확대가 기대되는 미래 시장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기존 주요 시장에서 관세 장벽이 강화되는 만큼 한국 철강업계는 신흥국 대상 전략적 거점 확보와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수출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아울러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 기조 속에서 철강산업의 친환경화와 고부가가치 제품 확대도 필수 과제로 제시됐다. 고강도·경량 소재, 재활용 가능한 친환경 철강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기술 혁신과 설비 고도화가 향후 경쟁력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업계는 단순한 생산량 확대보다 친환경 공정 전환과 고급소재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공문기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 주요 시장에서 관세 장벽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한국 철강업계는 신흥국 대상 전략적 거점 확보와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수출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석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단장은 “친환경 철강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고강도·경량 소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이러한 시장 변화 속에서 자만하지 말고, 기업 내 혁신 역량을 활용해 신사업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