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세 번째 유보… 구글에 내년 2월 5일까지 보완 신청서 제출 지시
해외 서버 고집 핵심… '팩트시트' 발표 안 된 시점서 섣불리 결정 어려워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정부가 구글의 고정밀 지도 해외 반출 요청에 대한 심의를 보류하면서 최종 결정이 또 한 번 미뤄졌다. 한미 관세·안보 협상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발표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디지털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업계 내 지적이 나온다.

   
▲ 사진=픽사베이 제공


국토교통부는 11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측량 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 회의를 열고 구글이 요청한 1대 5000 고정밀 지도 반출 여부를 논의했다. 협의체는 지도 정보의 해외 반출 여부를 심의·결정하는 기구로, 국토부를 비롯해 국방부·국가정보원·외교부·통일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행정안전부·산업통상자원부 등의 관계 부처가 참여한다.

이날 협의체는 고정밀 지도 해외 반출 요청에 대해 심의를 보류하고 구글이 내년 2월 5일까지 60일 내 보완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의결했다. 구글이 지난 9월 △위성 이미지 속 보안시설 가림(블러) 처리 △한국 좌표 정보를 국내외 모든 사용자에게 표시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 등에 대한 수용 의사를 밝혔으나 관련 내용을 포함한 보완 신청서는 추가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협의체는 "구글의 대외적 의사 표명과 신청 서류 간 불일치로 정확한 심의가 어려워 해당 내용에 대한 명확한 확인 및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구글이 보완 신청서를 추가로 제출하면 협의체 심의를 거쳐 고정밀 지도 반출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구글은 지난 2월 국토부에 1대 5000 축척의 국내 고정밀 지도를 해외 구글 데이터 센터로 이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정부는 지난 5월과 8월에 잇달아 결정을 유보하고 처리 기한을 연장했다. 이후 한미 정상회담 이후 관련 논의를 다시 이어가기로 하면서 이날로 결정을 미뤘지만 또 한 번 연기된 것이다.

구글이 반출을 요청한 1대 5000 축척 지도는 실제 거리 50m를 지도상 1cm로 줄여 표현한 지도로, 한국은 1대 2만5000 축척보다 자세한 고정밀 지도는 군사나 보안상의 이유로 해외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구글은 현재 1대 2만5000 축척 지도를 이용해 '구글 지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지도 서비스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서 이보다 5배 더 세밀한 지도 반출을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글은 지난 2011년과 2016년에도 정밀 지도 반출을 요구한 바 있다. 2016년에는 정부가 구글을 향해 '국내에 서버를 두고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활용하라'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구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올해 다시 문을 두드린 구글은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안보시설 블러 처리와 좌표 노출 금지에 대해서는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도, 여전히 국내 데이터 센터 설치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있다. 

◆ 업계선 "안보·디지털 주권 지켜야"… 정부 거듭 신중론

   
▲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도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해 국감 기간동안 지적된 사안에 대한 개선 방향을 보고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구글이 고정밀 지도를 반출을 요구하는 핵심은 국내 지도 서비스 사업자가 국내에 서버를 두고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해외 서버에 지도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를 저장하려고 하는 것에 있다.

구글이 수용한 조건으로 풀이되는 '보안 시설의 블러처리'를 하기 위해선 여전히 해당 시설의 좌표값이 요구된다. 국내에 서버가 없는 상황에서 해당 좌표값이 해외로 반출될 시에는 국가 보안 시설 위치만 고스란히 노출되는 위험성이 제기된다.

또 지도 데이터가 해외 서버로 반출될 시 한국 정부의 행정력이나 주권이 행사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즉각 해외 해커 조직 및 테러 단체 등에 의해 악용될 환경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안보가 걸린 민감한 사안에 대해 구글이 마치 양보하겠다는 식으로 보안 시설을 블러처리해주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안보 문제와 더불어 고정밀 지도 해외 반출 결정에 앞서 국내 공간정보산업이 가진 장기적 부가가치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공간데이터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자율주행, 디지털 트윈, 스마트시티 등 관련 기술과 산업이 고도화됨에 따라 관련 파급효과와 부가가치도 한층 증대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주요 문제점들에 현재 국토부 역시 고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는 있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내부적으로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올해에만 세 차례 결정이 연기된 것은 한미 간 관세·안보 분야 협상의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가 아직 발표되지 않은 영향이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미는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이후 이른 시일 내 팩트시트를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발표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고정밀 지도 반출 불허를 '비관세 장벽' 중 하나로 지목해온 상황에서 구글이 지도 반출을 거듭 압박하고 나선 것이었던 만큼 '팩트시트'가 발표되지 않은 시점에서 섣불리 결정을 내릴 경우 국익에 미칠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셈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애플도 한국 정부에 1대 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반출을 요청했으며 이에 대한 결정은 다음달 8일로 예정돼 있다. 업계에서는 고정밀 지도 반출이 한 번 승인되면 다른 빅테크들의 요청이 쇄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허용 시 국제 형평성 관점에서 반출 거부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지적이다.

또 업계는 한국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산업들의 주도권을 구글에 넘겨선 안된다고 경고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정밀 지도 반출 문제는 국가 안보와 디지털 주권, 그리고 미래 산업 경쟁력까지 걸린 사안”이라며 “정부가 국익과 안보를 우선에 두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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