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SK 조직 재정비 속도전
'불확실성 돌파 리더' 전면 배치
[미디어펜=박준모, 김견희 기자]재계가 예년보다 이른 인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삼성이 사업지원실장에 박학규 삼성전자 부회장을 선임하며 정기 인사의 신호탄을 쏘아올렸고, LG도 연말 인사 준비에 착수했다. 이미 사장단 인사를 마친 SK까지 포함한 주요 그룹들이 리더십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 세대교체를 넘어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미래 투자와 기술 혁신을 주도할 실무형 리더들을 전면에 세우려는 움직임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월 3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5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삼성, 사법리스크 해소 후 첫 인사…'뉴삼성' 승부수

1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예년보다 빠른 11월 중순께 사장단·임원 인사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삼성전자는 12월 초 연말 인사와 조직 개편을 실시해 왔으나,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하면서 선제적 대응 차원으로 매년 인사 시기를 조금씩 앞당기고 있다. 

이번 인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그룹 부당합병·분식회계 사건에서 대법원 무죄 확정을 받은 뒤 처음 단행하는 일이다. 그만큼 '뉴삼성' 가동의 분수령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그간 이 회장은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파격 인사에 신중을 기해왔다.

관심은 노태문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직무대행(사장)에게 쏠린다. '갤럭시 신화'를 써온 그는 부회장 승진과 함께 직무대행 꼬리표를 떼고 정식 부문장으로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1968년생으로 이 회장과 동갑이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업계에서는 동세대 경영진 체제가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갈 것이라는 기대를 내놓고 있다. 

다만 이번 인사는 주요 사업부에만 전략적 변화를 줄 가능성도 높다. 노 사장의 거취에 따라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 교체가 예상되며, 전영현 부회장이 겸직 중인 메모리사업부장 자리에도 변동 가능성이 제기된다.

후임으로는 최원준 MX개발실장, 송재혁 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황상준 D램개발실장 등이 거론된다. 이들 모두 50대 초중반으로, 삼성 역시 중간 세대 리더십으로 중심 추를 옮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성전자는 최근 사업지원TF를 사업지원실로 격상하고 박학규 사장을 사업지원실장에 임명했다. 이는 이 회장의 보좌 및 및 계열사 조율 기능을 강화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그간 '2인자'로 불려왔던 정현호 부회장은 회장 보좌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뉴삼성' 전략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3일 열린 ‘SK AI 서밋 2025’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SK그룹 제공


◆ SK도 인사 ‘속도전…현장형 리더 전진배치

SK그룹은 사장단 인사를 예년보다 한 달 이상 앞당겨 단행했다. 이에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CEO 세미나에 신임 CEO들이 참석해 그룹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리밸런싱과 사업 운영개선, AI 전환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이번 사장단 인사에서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리더를 중용해 주요 사업의 실행력과 조직 안정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먼저 SK텔레콤은 유영상 사장이 물러나고, 정재헌 최고거버넌스책임자(CGO)가 사장에 올랐다. 정 사장은 지난 2021년 SK스퀘어 설립 당시 창립 멤버로 전략·법무·재무 등 회사의 주요 부서를 총괄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SK온은 이용욱 SK실트론 대표이사를 사장으로, SK에코플랜트는 김영식 SK하이닉스 양산총괄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용욱 신임 사장은 소재와 제조업 전문성이 높다는 점에서, 김영식 신임 사장은 회사의 성장 사업 실행력을 바탕으로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또 SK이노베이션 E&S는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춘 이종수 LNG사업본부장을 사장으로 선임했다. 

특히 이번에 사장으로 승진한 11명 중 5명은 1970년대생으로 한층 젊어졌다. 김정규 SK스퀘어 사장은 1976년생, 김완종 SK㈜ AX 사장 1973년생, 염성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 1972년생, 이종수 SK이노베이션 E&S 사장 1971년생, 정광진 SK실트론 사장은 1970년생이다. 

SK그룹 회장 신임 비서실장에도 ‘젊은 피’로 꼽히는 류병훈 SK하이닉스 미래전략담당 부사장이 내정됐다. 류 신임 비서실장은 1980년생으로 김정규 전 비서실장보다 4살 어리며, 지난 2018년 차장급에서 곧바로 상무로 승진한 ‘초고속 승진자’로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SK그룹은 조만간 임원 인사도 발표할 예정이다. 임원 인사에서는 조직 슬림화를 위해 임원을 대폭 줄이고, 젊은 층을 리더로 중용하는 세대교체 움직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구광모 LG 대표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로봇 개발 스타트업 '피규어 AI(Figure AI)'에 방문해 휴머노이드 로봇을 살펴보고 있다./사진=LG 제공


◆ 부회장단 확대 검토하는 LG...기술 리더십 강화 '초점'

LG도 미래 사업 투자를 확대하는 가운데 기술 리더십을 강화할 수 있는 실무형 리더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화두는 현재 2인 체제인 부회장단을 3인으로 확대하는 지에 대한 여부다. 또한 57년생인 신학철 부회장의 연임 여부도 관심사다. 60년생인 삼성의 정현호 부회장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다. LG화학은 업황 부진으로 실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반등을 위한 키워드로 신임 CEO가 세워질지, 유종의 미를 거둘 기회가 주어질 지에 관심이 쏠린다.

새로운 부회장 후보로 조주완 LG전자 사장과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를 통해 LG는 미래사업 가속화를 위한 리더십을 구축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LG는 삼성이나 SK와 달리 오너가의 분쟁이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아 기존 리더십이 유지될 가능성도 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특히 LG는 올해 인사에서 '성과 기반 실용주의'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구광모 LG 회장은 최근 "기술 혁신과 고객 중심 사고가 LG의 본질"이라고 강조하며, 전장·AI·로봇 등 신성장 사업 영역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그룹 내 기술 기반 경영자들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재계 전반의 인사 흐름은 불황기를 버티는 유지형 조직에서 변화를 견인할 '행동형 리더십'으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40~50대 초중반의 실무형 경영진을 전면에 세우며, 빠른 판단과 실행력으로 불확실성 시대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10년 넘게 지속된 사법리스크와 불황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각 그룹이 다시 리듬을 되찾으려는 시점”이라며 “올해 인사는 단순한 승진이 아니라 불황을 준비하는 조직 재편이 첫 걸음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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