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 공백기 진입…운임 약세·연료 불확실성까지 겹쳐
한국 조선, ‘수주잔량 + 기술력’으로 방어
[미디어펜=이용현 기자]전 세계 신조선 발주 감소세가 뚜렷해지면서 조선업계가 단기 경기 둔화 국면에 들어섰다. 다만 한국 조선사의 경우 수주잔량과 친환경 연료 기술을 기반으로 충격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14일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전 세계 신조선 발주량은 3264만 CGT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6.9%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중 갈등 심화에 따른 미국의 관세 정책, 글로벌 교역 둔화, 그리고 2021년 이후 대량 발주된 신조선의 본격 인도 등이 겹치면서 선박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작년 동기 대비 52% 하락한 평균 1481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운임 약세까지 이어지고 있다.

탈탄소 규제와 관련한 불확실성도 발주 감소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IMO(국제해사기구)가 최근 2030년·2040년 감축 목표 강화 방향을 제시했지만, 현재 어떤 친환경 연료가 주력으로 자리 잡을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메탄올·암모니아·LNG 등 다양한 연료 옵션이 논의되고 있지만 각각의 안전성·가격·공급망·인프라 구축 수준이 제각각”이라며 “선주들 입장에서는 지금 선택한 연료가 10~20년 뒤 주류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주류가 될 연료 기술의 불확실성이 발주 관망세를 키우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국내 조선사의 경우 단기적 발주 감소에도 견딜 만한 체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조선 3사는 이미 2028년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수주잔량(Backlog)을 확보해 최소 3년 이상의 안정적 작업 물량을 확보한 상태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잔량은 LNG를 기반으로 한 고부가가치 선종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수익성도 안정적이다. 이에 발주 공백기가 오더라도 기존 프로젝트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구조인 만큼 단기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 경쟁력 측면에서도 한국 조선사는 오히려 현재의 불확실성을 유리한 국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HD현대중공업은 앞서 암모니아 추진 컨테이너선 설계에 대한 국제 인증인 AiP를 획득했으며, 삼성중공업은 지난 10일 미국 기업 아모지와의 협업으로 개발한 '암모니아 파워팩'의 국내 독점 위탁생산을 추진할 방침을 드러내는 등 다양한 친환경 연료 기반 선박을 설계·건조한 경험을 갖췄다. 

한화오션도 글로벌 해양 탈탄소화 센터와 △저탄소 및 무탄소 연료 △선박 내 탄소 포집 및 저장(OCCS) 기술 △에너지 효율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탄소중립 협력을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연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이러한 ‘다연료 설계 기술력’이 글로벌 선주들에게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특정 연료가 아닌 복수의 연료 옵션을 고려한 선박 설계가 향후 규제 변화에 따라 연료 전환 또는 연료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가능해 선주들의 투자 리스크를 줄여준다는 이유다. 

국내 조선사들을 압박해온 중국과의 격차도 뚜렷하다. 중국 조선업계는 그간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컨테이너선 중심의 물량 공세를 이어왔다. 

최근 중국 정부가 친환경 선박 시장 선점을 위해 글로벌 친환경 선박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생산한다는 ‘2024-2030년 조선업 녹색발전추진계획’을 발표하긴 했으나, 이 역시 현재 LNG 추진선 중심의 표준화 설계에 집중하고 있어 연료 유연성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한국 조선사의 대응력이 강하다. 

중국의 대량 건조 능력과 가격 경쟁력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탈탄소화가 본격화되는 ‘연료 전환기’에는 다연료 설계 경험이 풍부한 한국 조선사가 기술적 우위를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발주 감소는 일시적인 조정기일 뿐 시장은 친환경 선박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며 “탈탄소화 전환기에서 기술 포트폴리오를 얼마나 넓게 가져가느냐가 향후 시장 지배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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