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소윤 기자]국내 건설사들이 경기 불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방 중소건설사들은 물론 중견 건설사들까지 잇달아 쓰러지면서 외환위기 시절보다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잇단 대형사고가 발생해 건설업계의 어깨는 더욱 처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건설업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과거에도 숱한 어려움을 딛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회자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통해 기술력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우리 건설사들이 국내외에 지은 랜드마크를 알아보면서 K-건설의 힘찬 부활을 응원해 본다. [편집자 주]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다르다넬스 해협 위, 길이 3.6km의 거대한 강철 현수교가 장대한 위용을 드러낸다. 세계 건설사의 한계를 다시 정의한 초대형 프로젝트, 튀르키예 '차나칼레 대교'다. 국내 건설사 DL이앤씨의 역작으로도 꼽히는 '차나칼레 대교'는 세계 최장 주경간장을 기록하며 한국 건설 기술력이 글로벌 정상급 수준에 도달했음을 입증하는 대표적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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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나칼레 대교 전경./사진=DL이앤씨 |
◆세계 1위 현수교, '팀 이순신'이 만든 역작
차나칼레 대교의 출발점은 한국 기술 자립의 상징 '이순신대교'였다. 국내 최장·세계 8위 현수교인 이순신대교를 함께 지은 DL이앤씨와 SK에코플랜트는 '팀 이순신'이라는 이름으로 공동 입찰에 나서 2017년 일본을 제치고 사업을 따냈다.
DL이앤씨가 확보한 현수교 독자 기술력에 SK에코플랜트의 유라시아해저터널·보스포러스3교 등 유럽 시공 경험이 더해지며 세계 최고 난도의 해상 특수교량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다.
차나칼레 대교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2018년 4월 착공해 약 48개월간 공사가 진행됐다. 총 길이는 3563m, 주탑 간 거리(주경간장)는 세계 최장 기록인 2023m로 설계됐다. 기존 세계 1위였던 일본 아카시해협대교(1998년 준공, 주경간장 1991m)의 기록을 24년 만에 경신, '2km의 벽'을 깨고 새 역사를 쓴 것이다. 해상 한복판에 세워진 두 주탑의 높이는 334m로, 프랑스 에펠탑(320m)을 뛰어넘는다.
프로젝트명 '1915 차나칼레'는 터키 독립전쟁 승전 연도를, 주경간장 2023m는 공화국 100주년을 의미한다. 기술적 성취와 국가적 의미가 맞물린 상징적 사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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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치로 본 차나칼레 대교 현황./사진=DL이앤씨 |
◆ 초속 91m 강풍도 견디는 '바다 위의 하프'
차나칼레 대교는 '바다 위의 하프'라 불린다. 해상 위를 가로지르는 유려한 현수 케이블 곡선이 악기 하프의 실루엣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움 속에는 초정밀 공학이 촘촘히 숨어 있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최대 초속 90m급 강풍이 부는 험지로, 구조적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DL이앤씨는 이순신대교 시공 경험 노하우를 토대로 '트윈 박스 거더' 구조를 적용했다. 비행기 날개를 닮은 유선형 단면으로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고, 초강력 태풍급 바람에도 흔들림을 줄이는 설계를 완성했다. 차나칼레 대교는 순간 최대풍속 91m/s의 강풍도 견딜 수 있는 내풍 성능을 확보했다. 2003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60m/s)보다 1.5배 이상 강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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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나칼레 대교 시공 과정 모습./사진=DL이앤씨 유튜브 캡쳐 |
시공은 국내에서 제작된 64개 강철 블록을 해상에서 하나씩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조립됐으며, 주탑 한 개 무게만 약 1만8000톤에 달한다. 주케이블은 지름 5.75mm 초고강도 강선 127가닥을 육각형 형태로 묶은 와이어 스트랜드 144개로 구성됐다. 콘크리트 21만㎥, 철근 3만5000대 트럭 분량, 항공기 A380 150대 제작에 맞먹는 강판이 사용됐다.
승용차 6만대 무게를 견딜 수 있는 10만톤급 하중을 버티는 케이블은 고려제강이, 주탑·상판에는 포스코 강판 8만6000톤이 투입됐다. 핵심 자재와 설비 대부분을 국내 기업이 책임지고 '메이드 인 코리아' 기술력을 선보인 것이다.
48개월 간 이어진 공사 기간에는 총 1만7000여명의 인력이 동원됐지만 중대재해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DL이앤씨의 철저한 안전관리 시스템이 세계 건설업계에서 주목받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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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나칼레 대교./사진=DL이앤씨 |
◆ 디벨로퍼 역량 증명했다…美 ENR 표지 장식
차나칼레대교는 3.6km 현수교와 85km 연결도로를 건설하고 12년간 운영한 뒤 터키 정부에 이관하는 BOT(건설·운영·양도) 방식의 민관협력사업(PPP)이다. DL이앤씨는 사업 발굴, 금융조달, 시공, 운영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고 '글로벌 디벨로퍼'로서 역량을 시장에 각인시켰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 시장으로 뻗어가는 교두보 역할도 수행했다. 강판을 공급한 포스코를 비롯해 △고려제강(케이블 제작) △삼영엠텍(주 케이블 부속자재 및 앵커리지 정착구 공급) △관수 E&C∙엔비코(케이블 가설공사) △티이솔루션(현수교 주탑 진동 제어장치 포함한 제진장치 공급) 등 다양한 기업이 참여해 한국의 기술과 자재의 우수성을 국제무대에 알렸다.
세계 교량 역사에 기록될 초대형 프로젝트로 평가받는 만큼 해외 각국의 관심도 집중됐다. 미국 건설 전문지 ENR은 2021년 차나칼레대교를 표지에 실었고, 일본 경제신문 니케이 역시 취재에 나섰다.
올해는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해외건설 10대 프로젝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대교의 주요 성과와 기록물은 서울 중구 국토발전전시관에서 열린 해외건설 누적 수주 1조 달러 기념 특별전 '기억을 넘어 미래로'에 전시됐다. 전시는 지난 9월부터 내년 3월까지 약 6개월 간 운영된다.
[미디어펜=박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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