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CJ·오리온·농심·삼양식품 등 유통가 오너 3·4세 경영 전면 나서
‘승진 계단’ 아닌 ‘미래 방향타’ 결정 중책…“젊은 경영진 역할 중요”
[미디어펜=김성준 기자] 유통업계 1980~1990년대생 오너 3·4세들이 중책을 맡으며 속속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내수 부진 장기화로 ‘미래 먹거리’ 마련이 기업 핵심 과업이 되면서, 신사업을 이끄는 3·4세 경영진들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업계 전반에서 세대교체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신사업 분야 성과가 경영 능력 입증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 (왼쪽부터)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이선호 CJ 미래기획실장, 담서원 오리온 경영지원팀 전무, 신상열 농심 미래사업실장,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COO./사진=각 사 제공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삼양라운드스퀘어는 전날 2026년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오너 3세’ 전병우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전무로 승진 발령했다. 지난 2023년 상무로 승진한지 2년 만으로, ‘불닭’ 글로벌 마케팅과 해외사업 확장 등에서 거둔 실적이 승진 디딤돌이 됐다. 전 전무는 1994년생으로 유통가 3·4세 경영진 중에서도 젊은 나이다.

30대 후계자들의 고속승진은 유통업계의 전반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은 지난 2022년 상무로 승진한 뒤, 2023년 전무, 2024년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매년 승진을 거듭한 만큼 올해 롯데 정기 인사에서도 사장 승진 가능성이 점쳐진다. 신 실장은 현재 그룹 미래 성장축인 바이오와 글로벌 사업 분야를 담당하고 있으며, 그룹 한국·일본 계열사 간 협업을 확대하는 ‘원롯데’ 전략도 책임지고 있다.

이재현 CJ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 미래기획실장은 지난 9월 지주사로 복귀했다. 이 실장은 지난 2022년 임원(경영리더)으로 승진한 뒤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에서 식품성장추진실장을 맡아 신성장동력 발굴 업무를 수행해 왔다. CJ가 6개 임원 직급을 ‘경영리더’로 통합한 만큼 이번 인사에서 별도 승진은 없었지만, 그룹 신수종 사업을 기획·육성하는 신설 미래기획실의 수장으로 임명되며 그룹 미래를 책임지는 중책을 맡게 됐다.

이밖에도 오리온은 담서원 전무가, 농심은 신상열 전무가 각각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장남인 담 전무는 오리온 경영관리팀 전무 겸 계열사인 리가켐바이오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경영관리팀은 오리온 사업 전략 수립·관리, 글로벌 사업 지원 등을 수행하는 핵심 조직이며, 리가켐바이오는 오리온이 신사업으로 낙점한 바이오 부문의 핵심 계열사다. 신 전무는 신동원 농심 회장의 장남으로, 농심 미래사업실장을 맡아 건강기능식품, 스마트팜, 펫푸드 등 ‘탈라면’ 신사업 육성을 이끌고 있다.

전통적으로 그룹 신사업 부문은 오너 일가 후계자들의 승진 경로 역할을 해왔다. 핵심 사업과 비교해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적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사업 초기에 높은 성장률을 통해 ‘숫자’로 능력을 입증하는 기회가 될 수 있어서다. 특히 신사업이 안착할 경우 초기부터 사업을 일궜다는 상징성까지 기대할 수 있다. 경영 성과를 통해 오너 일가 승계의 명분을 갖춰 정당성을 세우는 역할이다.

다만 최근 유통업계의 ‘세대교체 바람’은 기업 체질개선을 위한 리더십 재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내수 경기 부진과 국내 성장 한계, 글로벌 경쟁 심화 및 불확실성 증대 등으로 인해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신사업은 기업의 핵심 전략 부서가 됐다. 실패에 대한 리스크도 커지며 ‘안전하게 실적을 쌓을 수 있는 계단’으로 보기도 어려워졌다. 3세·4세 경영진에겐 오히려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시험대가 된 셈이다.

주요 기업들이 중요성과 위험이 큰 자리를 젊은 후계자들에게 맡긴 것은 그만큼 ‘젊은 리더십’의 필요성이 부각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존 내수 중심이었던 유통업 외연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한 빠른 의사 결정이 중요해졌다. 특히 2030 소비자 사이에서 ‘밈(Meme)’을 바탕으로 한 소비 트렌드 유행이 일상화되면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젊은 감각’을 갖춘 경영조직이 필요해졌다는 해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사업 부문을 담당한다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고 회사 미래 방향성을 결정해야 하는 중책”이라며 “최근 젊은 경영진들이 신사업을 맡는 흐름은 단순히 빠른 승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맞는 능력을 발휘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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