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국내 시멘트 산업이 34년 만의 최저 내수 수준으로 추락하며 전례 없는 위기 국면에 놓였다.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정부의 강화된 탄소감축 정책이 기업 부담을 키우면서 업계 전반이 ‘수요 급감+환경 규제’라는 이중 압박에 직면한 것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위기를 '구조 개선과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할 기회'로 보는 시각도 공존한다. 각 사가 추진하는 체질 혁신 속도에 따라 향후 업황 반등의 격차가 뚜렷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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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시멘트 공장 전경./사진=한일시멘트 제공 |
20일 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올해 시멘트 내수 출하량은 약 3650만 톤으로 예상된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 수준인 1990년대 후반 기록과 비슷한 수준으로 34년 만의 최저치다. 건설 수주와 착공 물량이 전방위적으로 감소하면서 레미콘·시멘트 사용량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여기에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 원재료 가격 변동성, 운송비 부담도 겹쳐 업계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됐다.
특히 최근 정부가 기존 요구안보다 더욱 강화된 새 온실가스 감축 목표안을 발표하면서 시멘트 업체들은 추가적인 설비 전환과 탄소배출 저감 투자가 불가피해졌다.
이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것으로, 시멘트업계에서는 탄소 감축 이행을 위한 대대적인 설비 투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내수 감소로 매출이 줄어든 상황에서 정부의 신정책 압박까지 더해진 상황”이라며 “당장은 정부 정책 목표를 달성 가능한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위기 속에서 시멘트업계는 '구조 효율화'와 '친환경 전환'을 양대 축으로 한 생존 전략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
최근 업계의 관심사는 한일시멘트다. 지난 1일 한일현대시멘트와의 합병을 계기로 조직 재편·공장 배치·중복 투자 축소 등 실질적인 시너지 확보 작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어서다.
합병 이후 현재 한일시멘트는 생산·포장 공정 통합과 함께 노후 설비 개선 및 원료 대체 기술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내년까지 5179억 원 규모의 친환경 투자 계획을 진행 중인데 이는 업계 단일 기업 기준으로는 최대 규모다. 이 투자가 실제 가동되면 배출량 저감뿐 아니라 장기적 생산원가 경쟁력 확보에도 기여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일시멘트 관계자는 “기존부터 한일현대시멘트와의 연계로 특정 공장에서 포장 제품을 일원화해 생산하는 등 중복 공정을 줄여왔다”며 “공장끼리의 연계로 배차 효율, 원가 절감 등 통합 효과가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삼표시멘트 역시 효율화 측면에서 ‘질적 전환’을 진행해온 대표 기업이다. 현재 삼표는 자동화 설비를 확대해 인력 의존도를 줄이고 공정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의 ‘AI 자율제조 리딩 프로젝트’ 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2027년까지 49억 원의 투자금을 바탕으로 기존 시멘트 공정의 일부를 AI 기반 자동화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자동화로 인한 공정 효율화 및 인건비 절감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유연탄 중심의 연료 체계를 고형연료(SRF)·바이오연료 등으로 다변화하며 원가 리스크를 줄임과 동시에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3년 대비 21%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대응 방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수요 부진이라는 외부 요인보다 내부의 경쟁력 차이가 향후 업황 회복 속도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시멘트는 대표적인 내수산업이지만 국내 건설 수주 감소가 일정 수준에서 바닥을 형성하면 그 이후의 반등은 기업별 체질 개선 효과가 그대로 드러날 수 있다는 구조적 요인도 존재한다.
또한 정부가 SOC 예산 집행 확대와 도시·산업단지 재정비 사업을 예고하고 있어 2026~2027년부터는 점진적인 수요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건설 경기만 회복되면 업계가 일제히 실적이 개선되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친환경 규제, 연료비, 전기요금, 물류비 등 고정비 부담이 너무 커져서 효율화 없이는 시장 회복 이후에도 실적 개선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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