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대출금리 지적, 일방적 규제안까지 마련
   
▲ 경제부 류준현 기자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정부·금융당국·여당을 중심으로 금융권에 대한 경영 간섭이 심화되는 모양새다. 더욱이 지난 윤석열 정부 아래 금융지주 회장·이사회 선임을 둘러싼 지배구조 관련 문제의식은 현재진행형이다. 금융당국의 수장이 행동을 보이기에 앞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투서가 들어오고 있다"며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에 강한 비판의식을 내보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업무보고에서 "요새 저한테 투서가 엄청 들어온다"며 "무슨 은행에 행장을 뽑는다던가, 그런데 '누구는 나쁜 사람이고 누구는 선발 절차에 문제가 있다' 등 엄청나게 쏟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똑같은 집단이 이너서클을 만들어서 돌아가며 계속 해 먹더라"며 "돌아가면서 계속 회장 했다가 은행장 했다가 왔다 갔다 하며 10년, 20년씩 해 먹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찬진 금감원장은 "저도 '참호'라고 표현했는데, 특히 금융지주 같은 경우가 문제"라며 "회장과 관계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이사회가 구성되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과제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개별 산하 금융기관들에 대한 검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실제 지난 22일부터 BNK금융지주를 검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은 그동안 금융당국이 제시한 법적 가이드라인에 따라 회장·행장 등 임원을 선임해왔던 만큼,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전날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연임 확정 발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금융 임원추천위원회는 연임 결정 배경에 대해 "우리금융 이사회는 과반수가 과점주주 체제여서 어느 한 이사가 의견을 주도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며 "금융감독원의 지배구조 모범 관행을 충실히 반영해 최고경영자 승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우리금융이 언급한 금감원 지배구조 모범 관행은 지난 2023년 12월 '지배구조 모범관행' 발표에 따라, 전 금융권이 경영승계 절차를 전면 개편했다. 최근 회장 연임 및 행장 선임에 나섰던 금융권들이 일제히 강조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금융사의 지분을 가진 주주도, 금융사를 감독하는 당국 기관장도 아닌, 국정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 일개 금융기관 회장을 선임하는 절차에 이렇게까지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부하(금감원장)가 바로 현장검사에 착수하는 건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더욱이 국책은행도 아닌 주주 중심의 민간금융권에 대한 이 같은 발언은 관치금융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요소다. 

   
▲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정부·금융당국·여당을 중심으로 금융권에 대한 경영 간섭이 심화되는 모양새다. 더욱이 지난 윤석열 정부 아래 금융지주 회장·이사회 선임을 둘러싼 지배구조 관련 문제의식은 현재진행형이다. 금융당국의 수장이 행동을 보이기에 앞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투서가 들어오고 있다"며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에 강한 비판의식을 내보였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이 같은 관치금융 우려는 인사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당장 저신용자의 고금리대출 현상에 대해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초저금리로 대출받는 고신용자들에게 0.1%만이라도 이자 부담을 더 시키고, 그중 일부로 금융에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좀 더 싸게 돈을 빌려주면 안 되냐"고 발언한 바 있다. 금융기관이 고객의 신용(연체유무, 금액, 기간, 다중채무 등)을 토대로 돈을 빌려준다는 뜻의 '여신(與信)', 즉 대출의 정의를 무색케 하는 발언인 셈이다.

실제 해당 발언 이후 일부 은행들은 시장금리 상승에도 불구, 중저신용자에 한해 평균 대출금리를 크게 인하했다. 중·저신용자 일부 구간에서는 신용도가 매우 낮은 대출자가 조금이나마 좋은 대출자보다 대출금리가 낮기까지 했다. 상식적으로 이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금리구조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이날 보이스피싱 사고 발생 시 금융사의 과실이 없어도 배상금을 부담해야 하는 '무과실 배상제' 법안도 마련했다. 2개(강준현·조인철)의 법안이 발의됐는데, 배상한도가 각각 1000만원 이상, 최대 5000만원 이하로 설정돼 1000만~5000만원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장기 연체자의 빚 탕감을 돕기 위해 출범한 새도약기금의 분담금,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에 대한 출연금 등 정책비용 요구도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그동안 금융사고가 터지거나 이자장사 논란이 나오면 어김 없이 거론된 게 '금융의 공공재' 프레임인데, 이를 빌미로 정부와 금융당국은 금융사 길들이기에 나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민간회사인 금융기관을 사실상 정부의 산하기관으로 전락시키는 꼴 아니냐는 자조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내부통제 부실에 따른 대규모 금융사고, 지배구조의 투명성, 소비자보호 등 금융권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다만 정부·당국은 대규모 금융사고에 강하게 질책하면서도, 기업의 의사결정 자유는 최대한 존중해줘야 하지 않을까. 관이 민간 금융권의 주요 의사결정 자유까지 침해하며 경영에 개입하는 게 적합한 지 다시금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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