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경영 환경과 달라져 성장 한계 뚜렷…신약·R&D 겨냥
투자자 신뢰 확보 및 지배구조 리스크 관리도 중요 요인
[미디어펜=박재훈 기자]국내 제약업계 내 오너 중심 경영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통한 경영 전략 변경이 확대되고 있다. 정부의 약가인하 개편안과 신약 및 R&D 중심 등의 사안들이 맞물리면서 효율화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한미그룹 본사 전경./사진=한미약품


8일 업계에 따르면 명인제약은 이행명 회장 단독 대표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된다.

명인제약은 이관순·차봉권 2인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기로 하고 내달 정기주주총회에서 두 사람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앞서 명인제약은 코스피 상장 당시부터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공언한 바 있다. 특히 이관순 후보의 경우 한미약품에서 R&D 개발에 공헌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같은 흐름은 중견·코스닥 바이오 기업들에서 확대되고 있다. HLB는 미국 현지에서 CAR-T 치료제를 개발한 경험이 있는 연구개발 전문가를 대표이사로 전면 배치하며 글로벌 임상과 허가 전략을 총괄하도록 했다. 회사는 대표 교체 약 두 달 만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간암 신약 허가를 재신청하며 세 번째 도전에 나섰고 업계는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이 R&D·규제 대응을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는 이 같은 리더십 개편의 배경으로 신약 중심 비즈니스 모델 전환을 첫 번째로 꼽는다. 과거 국내 제약사들은 제네릭과 도입품 판매, 영업 네트워크에 기반한 안정적 수익 구조를 통해 성장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혁신신약과 고부가 바이오의약품 없이는 장기 성장에 한계가 뚜렷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여기에 올해 제네릭·특허만료 의약품 약가를 대폭 낮추는 제도 개편이 추진되면서 영업 중심 모델에 안주해온 기업일수록 수익성 악화 압력에 직면한 상황이다. 대규모 자본·긴 개발 기간이 필요한 신약 개발로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서는 임상·허가·글로벌 라이선스 구조를 이해하는 경영인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약품도 경영권 분쟁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을 가속화했으며 경영 체질 개선에 나섰다. 실제로 한미약품은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된 이후 실적이 개선되면서 지난해 매출 1조5475억 원, 영업이익 1조5475억 원의 연간실적을 기록했다.

이와 함께 투자자 신뢰 확보와 지배구조 리스크 관리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경영인 체제는 의사결정 구조를 이사회와 경영진으로 분리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기업지배구조 평가와 ESG 점수를 개선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증권업계 보고서들에서도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이 잦은 오너 변수에 지친 기관투자가들에게 긍정적인 시그널로 작용한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사례도 국내 기업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 머크(MSD)를 비롯한 주요 글로벌 제약사들은 오래전부터 가족 경영에서 벗어나 전문경영인 체제를 정착시켰고 연구 조직과 경영 조직을 분리해 신약 개발과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병행해 왔다. 최근에는 R&D 책임자를 CEO로 기용하거나 글로벌 제약사 출신 인사를 외부에서 영입해 CDMO(위탁개발생산)·바이오시밀러 등 신사업을 총괄하게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만능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약 개발처럼 불확실성이 큰 사업에서는 대주주의 오너십과 장기 투자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단기 실적 압박에 취약한 전문가 CEO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영업과 제네릭으로도 회사 운영에 무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비만·항암·치매 등 신약 개발을 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오너십과 전문경영 체제를 어떻게 조화롭게 설계하느냐가 중요도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