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급률 100%에 에틸렌 마진 '실종'
구조적 불황, 버티기만으론 공멸" 위기감
LG화학·금호석화, 원료 수직계열화 승부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석유화학 업계가 혹독한 구조적 겨울을 지나고 있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범용 플라스틱 수요마저 급감했다. 이에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기존의 범용 사업 비중을 줄이고, '초격차 스페셜티' 소재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 그 중심에는 배터리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소재, 탄소나노튜브(CNT)가 있다.

   
▲ LG화학 여수 탄소나노튜브 공장 전경./사진=LG화학 제공


8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등 주요 기업들의 NCC(나프타분해설비) 가동률은 70~80% 수준에 머물러 있다. 통상적으로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지는 가동률 90%를 한참 밑도는 수치다.

문제는 이것이 일시적인 경기 순환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인해 에틸렌 스프레드(마진)가 구조적으로 훼손됐다. 업계 관계자는 "범용 제품(PE, PP)으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이익을 낼 수 없는 '제로 마진' 시대가 도래했다"며 "기존 설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CNT는 석유화학 기업의 구세주로 떠오른다. CNT는 전기차 배터리의 양극재와 음극재에 들어가는 '도전재'로, 전기와 열 전도율이 구리나 다이아몬드보다 월등해 배터리 용량과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려준다.

주목할 점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CNT 시장에서 갖는 독보적인 경쟁력, 바로 '수직계열화'다.

CNT의 주원료는 에틸렌이다. 기존 배터리 소재 전문 기업들은 에틸렌을 외부에서 구매해야 하지만, 석유화학 기업들은 자체 NCC 공장에서 생산된 에틸렌을 파이프라인으로 직접 공급받는다. 팔 곳 없던 에틸렌을 고부가가치 소재인 CNT로 전환해 '원가 경쟁력 확보'와 '가동률 방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전략이다.

LG화학은 여수·대산 공장에, 금호석유화학은 여수·아산 공장에 CNT 생산 라인을 증설하며 '규모의 경제'를 넘어 '기술의 경제'로 진입하고 있다.

하지만 CNT 시장도 안심할 수는 없다. 시장 구조가 '범용(MWCNT)'과 '하이엔드(SWCNT)'로 급격히 양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다중벽 CNT(MWCNT)'는 이미 중국발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중국의 씨나노(Cnano) 등이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저가 물량을 쏟아내며 가격을 무너뜨리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MWCNT 분야에서는 수익성 방어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반면, '단일벽 CNT(SWCNT)'는 기술 장벽이 높아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돼 있다. SWCNT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인 '실리콘 음극재'의 팽창을 제어하는 필수 소재로, 적은 양으로도 획기적인 성능 개선이 가능하다.

현재 전 세계 SWCNT 시장은 러시아 기업 옥시알(OCSiAl)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이에 국내 기업인 LG화학, 금호석유화학 등은 SWCNT 기술 독자 개발 및 양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업계는 2026년을 기점으로 한국 기업들이 옥시알의 독점 체제를 깨고 SWCNT 시장 점유율을 본격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CNT 시장의 승부처로 '건식 전극 공정'을 꼽는다. 테슬라와 삼성SDI 등이 공정 비용 절감을 위해 도입을 서두르는 건식 공정은 액체 용매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활물질을 고르게 분산시켜 줄 고성능 CNT가 필수적이다.

이 영역은 중국 기업들이 아직 진입하지 못한 '초격차' 기술 분야다. 배터리 셀 제조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와 완성차 업체(OEM)들은 공급망 안정성을 위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있으며, 이는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에 기회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과거 석유화학 산업이 '양적 성장'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기술적 난도가 높은 소재를 선점하는 '질적 생존'의 시대"라며 "CNT를 필두로 한 스페셜티 소재로의 전환 속도가 향후 10년, 기업의 생존 여부를 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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