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팟 운임 의존도 낮추고 장기 계약 기반 확대
재무 체력·네트워크 통제력이 실적 좌우
[미디어펜=이용현 기자]글로벌 해운 산업이 단순한 운송업을 넘어 계약·자산·재무 중심 산업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발주된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본격 인도되며 선복 과잉이 심화되고, 운임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선사들의 수익 안정화가 더 이상 운임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되면서다. 이에 장기 계약 비중, 선박 자산 운영 전략, 현금 및 재무 여력 등이 성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 HMM의 건화물선./사진=HMM 제공

12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선사 머스크는 지난 5일 컨테이너 선박 과잉 용량과 홍해 노선 단거리 재개에 따른 운임 하락 가능성을 언급하며 올해 수익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신 물류·서비스(Logistics & Services)와 터미널(APM Terminals) 부문의 수익 기여도를 강조했다.

머스크는 2023년부터 해상(Ocean), 물류·서비스, 터미널 부문을 별도로 구분해 관리하고 있다. 단일 운임 사이클에 실적이 좌우되던 구조에서 벗어나 사업 포트폴리오를 통해 리스크를 분산하겠다는 전략이다. 해상 운임이 흔들리더라도 계약 기반 물류 매출과 터미널 수익이 일정 부분 완충 역할을 하도록 구조를 설계했다.

최근에는 비용 절감과 자본지출(CAPEX) 조정 방침도 함께 밝히며 투자 속도 관리에 나섰다. 선복 확대 경쟁에 뛰어들기보다는 현금흐름과 재무 체력을 우선 관리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운임 반등을 기다리는 대신, 저운임 국면을 버틸 수 있는 재무 구조를 다지는 데 방점을 찍은 셈이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 MSC의 경우 안정적인 재무 자산을 기반으로 계약 기반을 늘리고 있다. MSC는 최근 2만4000TEU급 LNG 이중연료 초대형선을 순차적으로 인도받으며 선대를 확대하는 한편, 2025년부터 머스크와의 2M 얼라이언스를 종료하고 독자 네트워크 체제로 전환했다.

겉으로는 공격적인 외형 확장처럼 보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단기 운임 대응이 아닌 장기 시장 지배력과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본다. 대규모 선복과 독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글로벌 화주와의 연간·다년 계약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산이라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MSC의 선대 전략은 단순한 물량 확대가 아니라 계약 협상력 강화를 위한 기반 구축에 가깝다”며 “저운임 국면에서는 결국 장기 계약과 네트워크 통제력이 수익 안정성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확장 여부가 아니라 어떤 재무 기반 위에서 선대를 운용하느냐라는 설몀이다. 운임이 하락해도 장기 계약 비중이 높고 현금 유동성이 충분한 선사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선사는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선박은 자산이지만 이를 지탱하는 것은 재무 체력이라는 의미다.

국내에서도 계약 중심 전략 전환이 가시화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HMM은 SCFI(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 하락 국면에서 장·단기 계약 혼합 구조를 통해 변동성을 관리하는 한편, 최근 20만9000DWT급 드라이 벌크선을 인수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통상 1년 단위 계약 비중이 높은 컨테이너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안정적인 현금흐름원을 확보하려는 조치다.

실제로 HMM은 브라질 광산업체 Vale와 10년 장기 운송계약(COA)을 잇따라 체결하며 벌크 부문의 중장기 물동량을 확보했다. 올해 체결된 두 건의 계약 규모는 합산 1조 원을 웃도는 수준으로 2026년부터 향후 10년 간 철광석 운송을 맡는 내용이다. 단기 운임 변동과 무관하게 일정 물동량과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한 셈이다.

이는 단순한 선복 확장이 아니라 계약 기반 수익을 확대하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컨테이너 부문이 스팟 운임 영향을 크게 받는 구조라면 벌크 부문의 장기 COA는 현금흐름을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결국 해운업계에서는 초대형선 인도가 이어지는 구조적 과잉공급 환경에서 단기 운임 반등만을 기대하는 전략은 한계가 분명하다고 본다. 저운임·과잉공급 시대, 해운사의 경쟁력은 선복 규모가 아니라 계약 구조와 재무 체력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운임 사이클을 얼마나 잘 타느냐가 실적을 좌우했지만 지금은 저운임이 기본값이 된 환경”이라며 “초대형선 인도가 계속되는 구조적 과잉공급 국면에서는 단기 운임 반등에 기대는 전략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재무 건전성을 기반으로 한 장기 계약 확보, 자산 운용 효율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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