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장기화된 고물가와 고금리 여파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실용성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때 소형 SUV와 중형 하이브리드에 밀렸던 경차가 다시 주목받으며 신차는 물론 중고차 시장에서도 몸값이 치솟는 모습이다.
16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 캐스퍼 일렉트릭(EV)은 계약 후 차량을 인도받기까지 최대 25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솔린 모델 역시 트림에 따라 17~19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기아 레이도 상황은 비슷하다. 레이 EV는 약 10개월, 가솔린 모델은 7개월가량의 대기가 필요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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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사진=현대차 제공 |
◆ '가성비'의 역습…신차·중고차 동반 품귀
경형 SUV 캐스퍼와 박스형 경차 레이는 최근 경차 시장을 이끄는 대표 모델이다. 두 차종은 1000cc급 엔진을 기반으로 취득세 감면과 공영주차장·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등 경차 혜택을 제공한다. 차량 가격과 세금, 보험료, 연료비 등 유지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고금리 환경 속에서 차량 구매가와 유지비 등 총소유비용을 낮추려는 실속파 소비자가 늘어난 것이 경차 수요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실질 구매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은 경형 모델로 수요가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수요가 특정 사양에 집중되면서 출고 적체는 심화되고 있다. 안전·편의 사양이 포함된 상위 트림과 인기 외장 색상을 선택할 경우 대기 기간이 1년 이상으로 늘어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옵션 조합은 계약 이후 장기 대기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신차 공급이 막히자 수요는 중고차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연식이 짧고 주행거리가 적은 매물은 등록 직후 거래가 이뤄지고 있으며, 일부 인기 트림은 신차 가격에 근접한 수준까지 호가가 형성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금리 환경에서 유지비 부담을 낮추려는 소비 성향이 강화되면서 경차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난 상황"이라며 "신차 대기 기간과 중고차 시세 강세가 동시에 이어지는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위탁 생산 구조·수출 배정 겹치며 공급 병목
경차 품귀 현상의 배경에는 생산 구조의 한계가 자리한다. 캐스퍼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 레이는 동희오토에서 각각 전량 위탁 생산 방식으로 제작된다. 두 공장은 설비와 인력 규모가 일정하게 고정돼 있어 수요가 급증해도 생산량을 단기간에 확대하기 어렵다.
일반 완성차 공장처럼 잔업이나 특근을 통해 물량을 크게 늘리기에도 제약이 따른다. 그 결과 국내 대기 수요는 누적되는 반면 공급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위탁 생산 체계의 경직성이 출고 지연을 장기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해외 시장 물량 배정도 국내 공급을 압박하고 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유럽과 일본 등에서 전략 차종으로 판매가 확대되면서 생산 물량의 상당 부분이 수출용으로 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높은 해외 시장을 우선 공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기업의 해외 수출 전략과 내수 시장의 수요가 동시에 확대되면서 공급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내수 대기 물량은 계속 쌓이는데 생산 능력은 단기간에 늘리기 어려운 구조"라며 "생산 라인 증설이나 공정 효율화 같은 근본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현재의 출고 적체 현상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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