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최근 제주 노선에서 1만 원대 항공권이 등장했다. 최대 95% 할인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이 더해지면서 가능한 가격이다. 항공권이라기보다 행사 상품에 가까운 숫자다.
하지만 이는 사상 최대 여행 수요 속에서 나온 가격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공항은 붐비고 인기 노선은 빠르게 매진된다. 좌석은 속속 채워지는데 운임은 오히려 내려가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해외 관광객(아웃바운드) 수는 2950만 명으로, 코로나19 이전 역대 최대였던 2019년(2871만 명)을 넘어섰다. 단순한 회복을 넘어 ‘사상 최대’ 수요다.
통상적으로 이런 국면에서는 가격이 상승 압력을 받는다. 공급이 그대로라면 좌석은 빠르게 채워지고 항공사는 운임을 올려 수익을 극대화한다. 경제학 교과서대로라면 지금은 항공권 가격이 오르는 시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1만 원대 특가와 함께 LCC(저비용항공사)들은 너나할 것 없이 할인 프로모션을 경쟁적으로 내놓는다. 수요는 최고치인데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낮아지고 있다.
어릴 적 기억 속 비행기 여행은 조금 달랐다. 공항에 가는 일 자체가 하나의 행사였고 탑승권을 손에 쥐는 순간에는 묘한 설렘이 따랐다.
차나 배보다 빠르고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도 비행기는 ‘프리미엄’에 가까운 이동 수단이었다. 쉽게 결정하기보다는 마음을 먹어야 하는 선택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항공권 가격이 커피 몇 잔 값과 비교될 정도다.
문제는 가격의 대중화가 곧 수익의 안정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 등 주요 LCC들은 지난해 영업손실이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 규모로 확대되거나 이익 폭이 크게 줄었다. 여객 수는 늘었지만 운임 단가는 하락했고 고환율에 따른 항공기 리스료 부담과 유류비·인건비 상승 등 비용 요인은 그대로다. 좌석은 채워졌지만 수익성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런 배경에는 항공 산업 특유의 구조가 있다. 항공기는 띄우는 순간부터 비용이 발생하는 고정비 비중이 높은 산업이다. 최근 LCC들은 항공기를 계속 도입하고 노선 증편을 경쟁적으로 진행했다. 빈 좌석을 남겨두느니 낮은 가격이라도 판매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반복되면서 평균 운임은 점점 내려갔다.
문제는 이런 전략이 개별 항공사가 아니라 시장 전반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단가를 올리면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한 항공사가 가격을 인상하면 승객은 더 저렴한 항공사로 이동한다. 낮은 가격을 유지하면 손실이 누적된다.
또 모든 항공사가 동시에 가격을 올리려 해도 이는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해당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구조적으로 누구도 먼저 멈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점유율 경쟁이 수익성 경쟁을 압도하는 환경에서, 출혈 경쟁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만원의 행복’은 당장 소비자에게 이익이다. 하지만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 가격 구조는 산업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특가 이벤트가 아니라 수익성과 안전을 함께 고려한 전략 재정립이다. 승자가 없는 경쟁은 결국 모두를 지치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혜택도 제한될 수 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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