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산업의 급성장으로 반도체 시장의 중심축이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그중 HBM(고대역폭메모리)은 AI 연산 속도와 효율을 결정짓는 핵심 부품으로, 관련 기술 경쟁이 국가 단위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이에 미디어펜은 국내 반도체 산업이 맞이한 변곡점과 기술 패권 경쟁의 흐름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AI 산업의 핵심 부품인 HBM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압도적인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AI와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고성능 메모리를 선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확고히 굳히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AI 모델의 대형화로 연산량이 폭증하면서 메모리 대역폭을 확보하는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며, HBM이 반도체 생태계 내에서 ‘AI 시대의 실질적 엔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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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픽사베이 제공 |
2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이 HBM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여전히 기술력과 양산 능력에서 최소 2년 이상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이하 마이크론)도 HBM4 공급을 공식화하며 경쟁에 합류했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대비 일부 기술·물량 측면에서 불리한 평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또한 정부 차원의 반도체 자립 기조 아래 HBM 기술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핵심 장비·소재의 해외 의존도가 높고, AI 반도체용 패키징 기술의 정밀도 면에서도 격차가 크다. 일부 현지 업체가 HBM3 수준의 시제품을 선보였지만, 수율과 전력 효율이 상용화 단계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의 TSMC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의 간접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AI 칩 패키징(HBM-COWOS)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다.
◆ 차세대 HBM4E·HBM5 로드맵으로 격차 확대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HBM4 양산에 성공하며 AI용 메모리 시장의 기술 리더십을 입증했다. HBM4E(2027년), HBM5(2029년) 등 차세대 제품 로드맵을 통해 성능·전력 효율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HBM4E는 HBM4의 기본 구조를 기반으로 동작 속도와 대역폭, 전력 효율을 개선한 제품이다. 실제 업계에서는 엔비디아, AMD 등 글로벌 AI 칩 제조사들이 HBM4E 공급선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기업과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도 설 연휴 이후 HBM4 양산에 돌입해, 패키징 기술 고도화와 공정 안정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기존 TSV(실리콘 관통 전극) 구조를 최적화하고, 열 관리 효율을 개선한 신소재를 적용해 칩 적층 수를 늘리면서도 발열 문제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HBM 전용 공정 비중을 늘리고 생산라인을 재배치하며 품질 균일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선제적 대응이 차세대 GPU·AI 칩 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점유율을 더욱 높일 것으로 전망한다.
이 가운데 AI 반도체 시장의 급성장이 HBM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대형 생성형 AI 모델은 수십억~수천억 개의 파라미터를 처리하기 때문에 기존 D램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에 따라 AI 가속기와 GPU 제조사들이 HBM 탑재를 사실상 표준 사양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글로벌 서버·클라우드 업체들의 대규모 증설로 향후 3년간 HBM 수요가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 기술력·생산능력 모두 'K-반도체'가 앞서
업계에서는 글로벌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50% 이상을 점유하며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삼성전자가 20~30%대 비중으로 뒤를 잇는 것으로 분석한다. 올 들어 마이크론이 HBM3E 공급을 시작하며 점유율을 10%대 초반으로 끌어올렸지만, 시장 주도권은 여전히 국내 양사 중심의 '양강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마이크론의 공급 확대는 시장 다변화에는 긍정적이지만, 기술 격차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한다.
AI 서버에 필수적인 HBM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미국과 중국은 자국 내 생산 라인 확충과 기술 독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미세공정·적층 공정·패키징 기술의 세 영역을 모두 구현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다. HBM 완제품 생산 전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의 기술 경쟁력은 여전히 독보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엔비디아, AMD 등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여전히 한국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공급 안정성과 기술 지원 측면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요 HBM 공급 파트너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AI 반도체용 HBM 공급망은 고품질 웨이퍼와 고열 패키징 기술이 핵심이어서 생산 경험과 품질 관리 역량이 검증된 한국 기업들이 높은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네트워크가 단순한 납품 관계를 넘어, AI 생태계 내에서 'K-반도체 중심의 글로벌 기술 연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제언도 나온다. HBM을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공급망이 안정화되면, AI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주장이다. AI 반도체 핵심 부품을 사실상 한국이 공급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 국가 차원의 반도체 전략 경쟁에서도 중요한 외교·경제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 시장 확대와 함께 HBM 수요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술 로드맵과 양산 능력에서 경쟁국보다 최소 2~3년 앞선 만큼, 미국과 중국의 추격에도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확실히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차세대 HBM 세대 교체 주기가 짧아지는 상황에서 기술 완성도와 양산 속도를 동시에 확보한 국내 기업의 우위는 당분간 굳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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