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준모 기자]두산그룹의 고(故) 매헌 박승직 창업주와 고 연강 박두병 초대회장이 ‘대한민국 기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두산은 24일 서울 이화여대 경영대학 60주년 기념홀에서 열린 한국경영학회 주최 ‘대한민국 기업가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창업주와 초대회장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부자 경영인이 동시에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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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일 서울 이화여대 경영대학 60주년 기념홀에서 열린 ‘대한민국 기업가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오른쪽)이 헌액 기념패를 들고 양희동 한국경영학회 회장(왼쪽)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두산 제공 |
박두병 초대회장의 장손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헌액식에 참석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자의 마음으로 걸어갔던 선대의 창업정신과 도전정신이 두산의 DNA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며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던 선대의 기업가정신을 이어받아 두산을 더 좋은 기업으로 만들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전했다.
두산의 역사는 1896년 박승직 창업주가 종로에 문을 연 ‘박승직 상점’에서 시작된다. 올해 창업 13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 기록상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평가된다.
그는 보부상 출신으로 포목상, 무역업, 양조업, 운수업 등으로 사업을 넓히며 한국 근대 상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경성포목상조합과 직물상공제회 등 상인 단체를 하며 상인 권익 보호는 물론 민족 경제 발전에도 기여했다.
특히 ‘근자성공(부지런한 자가 성공한다)’라는 경영철학을 가슴에 새기며 성실을 무기로 성실과 꾸준함을 무기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1915년에는 한국 최초의 국산 화장품인 ‘박가분’을 만들면서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박가분은 박승직 창업주 부인인 정정숙씨가 내조의 일환으로 판매했으며, 높은 인기를 끌었다.
박승직 창업주가 두산의 기틀을 다졌다면 박두병 회장은 근대적 기업 집단으로 탈바꿈시켰다. 1946년 ‘박승직상점’ 상호를 ‘두산상회’로 바꾸고, 광복 이후 혼란기 속에서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정비하며 성장 기반을 완성했다.
그는 동양맥주를 시작으로 식음료는 물론 건설, 식품, 기계, 유리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그 결과 박두병 초대회장은 재임 기간동안 총 13개 계열사를 설립했으며, 그룹 매출을 349배 성장시키는 성과를 달성했다.
또한 인화(人和)를 두산의 기업문화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는 유능하고 성실한 직원을 우대하면서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챙기면서 두산이 조직 내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아시아상공회의소 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민간 경제인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특히 아시아상공회의소 연합회 회장 선출은 한국 기업인이 국제 경제단체 수장으로 선출된 첫 사례였으며, 퇴임 후 종신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한국경영학회 측은 선정 이유에 대해 “박승직 창업주는 한국 근대 기업사의 기틀을 마련한 기업가로서 근대적 기업 조직과 책임경영의 기반을 형성함으로써 이후 한국 기업 발전의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이어 “박두병 회장이 추진했던 사업 다각화, 해외시장 개척 등은 한국의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기업 경쟁력을 높인 대표적 사례”라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기업 환경 개선과 제도적 기반 마련에 기여함으로써 국가 경제 발전에도 구조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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