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막히자 현지 밸류체인 붕괴… 사우디 셧다운
한화·삼성의 수조원대 중동 해양플랜트 발주도 올스톱
장기적으론 가스선 톤마일 특수, 당장은 생태계 마비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중동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온 국내 조선업계의 글로벌 확장 전략에 비상이 걸렸다. 수년간 공들인 중동 현지 조선소 가동과 수조 원대 해양플랜트 수주가 기약 없이 미뤄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K조선의 글로벌 확장 밸류체인 전반에 치명적인 타격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인도한 초대형 LNG 운반선./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이번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의 가장 직접적인 타격권에 놓인 곳은 HD한국조선해양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등과 합작해 세운 중동 조선소 IMI(International Maritime Industries)'다. 페르시아만 연안 라스 알헤어 지역에 세운 이 조선소는 이란과 지리적으로 마주 보고 있어 확전 사정권에 노출돼 있다.

또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에서 현지로 보내야 하는 핵심 선박 블록과 엔진 부품 조달 해상 루트가 막혀 조선소 셧다운이 불가피하다.

HD현대 측은 현지에 파견된 한국인 엔지니어와 주재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하기 위한 비상 철수 시나리오 가동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립을 추진 중이던 선박 엔진 합작사 '마킨(Makeen)'의 본가동 일정 역시 무기한 표류하게 됐다.

HD현대 관계자는 "중동 지역 정세 악화에 따라 현재 이들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인원들의 재택근무 전환 및 비상 연락망 가동 등 보호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중"이라며 "향후 현지 상황을 지속 모니터링하며 임직원의 안전을 최우선해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도 중동발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수익성 극대화의 핵심 열쇠로 꼽혔던 카타르 최대 해상 유전인 '알 샤힌(Al-Shaheen)'의 루야(Ruya) 확장 프로젝트나, 사우디 아람코의 대형 해양 가스전 설비 등 굵직한 초대형 해양플랜트 수주가 '올스톱'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해양플랜트 사업은 프로젝트당 기본 1조 원에서 최대 3조 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된다. 전쟁 발발로 불확실성이 극에 달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메이저들과 중동 국영 기업들은 대규모 자본 지출(CAPEX)을 전면 보류하거나 계약상 '불가항력(Force Majeure)' 조항을 선언하며진행 중이던 입찰 일정을 무기한 연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중동 프로젝트 납품을 준비하던 국내 1~2차 기자재 협력사들의 자금줄까지 마르게 하는 연쇄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K조선의 본업인 '상선' 부문 전체를 흔들 치명상은 아니라는 제한적 긍정론도 나온다. 이미 3.5년 치 이상의 넉넉한 일감을 확보해 당장의 실적 방어가 가능한 데다, 중동발 에너지 수급 위기가 글로벌 선주들의 에너지 수입처 '탈(脫)중동'을 가속해 역설적인 호재로 작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닫혀 유럽과 아시아가 미국이나 호주, 아프리카 등 더 먼 대륙에서 가스를 수입하게 되면 수송 거리가 늘어나는 '톤마일(Ton-mile) 효과'가 발생한다. 이는 한국 조선사들이 독점적 경쟁력을 갖춘 고부가가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 유조선(VLCC)의 추가 발주를 자극하는 요인이 된다.

그럼에도 수년간 천문학적인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구축한 중동 현지화 생태계가 붕괴한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수입처 다변화로 장기적인 가스선 특수를 기대할 순 있겠지만, 당장 현지에 투입된 막대한 자본과 조업망이 마비된 것은 개별 기업과 밸류체인 생태계에 손실"이라며 "본사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가동해 중동 리스크를 차단하고, 수주 영업망을 북미와 호주 등 안전 지대로 전면 재편하는 비상 경영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