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배소현 기자]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글로벌 산업계가 중동 정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동 지역 지정학 리스크가 확대될 경우 에너지 가격과 해상 물류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이 경우 반도체와 AI(인공지능) 산업을 포함한 글로벌 IT 공급망은 물론, 한국의 반도체·전자 산업에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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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으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9일 뉴욕 상품거래소에 따르면 국제 유가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한국시간 기준 이날 오전 7시께 나란히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WTI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것은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브렌트유 역시 전장 대비 약 10% 급등하며 102달러 수준을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최근 유가 급등 배경으로 중동 지역 긴장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 확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물류의 핵심 통로로 꼽힌다. 이란은 하루 약 3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며 세계 공급의 약 4~5%를 차지하는 산유국이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 등 주요 산유국의 수출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지정학적 긴장이 실제 해상 물류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최근 공격 위협과 해상 보험 중단 등의 여파로 일부 해상 운송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 불안도 커지고 있다.
월가에서는 유가 상승이 일정 수준을 넘어설 경우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이 빠르게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클라우디오 이리고옌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에서 장기간 유지될 경우 경제에 '비선형적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유가가 100달러 수준에서 지속될 경우 미국 경제 성장률이 약 0.6%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반도체 덮친 '중동 변수'
이 같은 에너지 공급 불안은 반도체 등 글로벌 첨단 산업에도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기업들도 에너지 가격과 소재 공급망 변동 가능성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국내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 국내 유조선 7척이 묶여 있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일부 선박에는 약 200만 배럴의 원유가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의 하루 원유 소비량에 맞먹는 규모다. 업계에서는 유가 및 LNG 가격 상승이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경우 반도체 제조 원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헬륨' 등 핵심 소재의 중동 의존도가 높은 점도 위험 요인이다. 헬륨은 웨이퍼 냉각과 장비 누설 테스트 등에 쓰이는 반도체 공정 필수 가스다. 국내 헬륨 공급 역시 상당 부분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 수급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같은 공급망 리스크는 실제 글로벌 IT 산업 전반의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최근 보고서에서 에너지 가격 상승과 메모리 공급 불안을 주요 변수로 지목하며 올해 글로벌 IT 시장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0%에서 9%로 하향 조정했다.
IDC는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유가 급등이 장기화될 경우 데이터센터 운영비와 반도체 생산비, 물류비 전반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전력 소비 큰 AI 데이터센터도 불똥 가능성
최근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AI 인프라 역시 에너지 가격 변동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구조인 만큼 전력 생산 비용과 에너지 가격 변화가 운영 비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확대하는 가운데 중동 역시 최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UAE를 중심으로 향후 10여년 동안 7~8기가와트(GW) 규모 데이터센터가 건설될 예정인데, 중동 정세가 악화될 경우 프로젝트 일정 지연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변수들이 데이터센터 인프라 확장 속도와 관련 산업 수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AI 인프라 경쟁이 단순한 반도체 성능 경쟁을 넘어 전력 확보와 에너지 비용, 공급망 안정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단계로 확대되고 있다는 풀이도 제기된다.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과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와 인프라 안정성이 AI 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 인프라 경쟁이 반도체 성능뿐 아니라 에너지와 공급망 안정성까지 고려하는 단계로 확대되고 있다"며 "중동 정세가 장기화될 경우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산업 전반에 예상보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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