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당선자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일본제국주의가 군국주의로 치닫고 태평양 전쟁에 빠져든 것은 일본육해군의 군대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게 일본 전문가의 해석이다.
일본 경세기획청 장관을 지냈으며 만국박람회를 개최한 바 있고, 뛰어난 역사 저술로도 유명한 사카이야 다이치 씨는 자신의 저서 『조직의 성쇠』에서 일본 장교들이 군대 이기주의에 빠진 원인을 ‘군인 공동체’화로 꼽았다. 당시 일본 내 최고의 엘리트들로서 입교한 뒤 사관학교에서 동고동락한 군장교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과 단결력으로 군대 조직의 확대와 권한 강화를 위해 일생을 걸었다고 사카이야 씨는 말했다.
조직의 공동체화가 이뤄지면 조직의 기능 향상보다는 조직의 확대와 안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폐쇄적 속성이 드러나게 된다. 군대가 폐쇄적 조직이 되면 국민을 위한 존재 목적보다 그 조직의 이익을 상위에 두는 잘못을 범하게 되고 심지어 그런 판단에 궤변적 ‘윤리성’까지 부여하게 되면 매우 위험한 조직이 된다고 사카이야 씨는 지적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음에도 일본군 장교들은 끝까지 군축을 반대하여 그것을 관철하였고 마침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인 미국과 중국과의 전쟁을 감행하는 파국적 결정에 이른 점이다. 일본군 장교들과 현역 장성의 대신들은 ‘평화’라는 세계 흐름과, 막대한 군비로 인한 국가재정 형편엔 아랑곳 하지 않고 군대의 확대만을 추구했던 것이다.
1930년 런던 군축 조약에 의해 자국 군함의 수량을 제한하자, 해군 사령부는 이 조약을 ‘통수권 침범’이라고 반대했고 격한 감정에 휩쓸린 장교는 할복자살 하고, 군축을 주도했다 하여 당시 총리대신이 암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때까지 일본 정치가들이 군인 공동체를 억누르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천황이 급기야 군축 조약의 준수를 특별히 하달했음에도 허사였다. 일본 제국내각은 군대의 압력으로 단독으로 조약을 파기하고 군함을 건조하는 결정을 강행했다.
이리하여 1937년 이후 일본 정부는 육해군을 통제하기는커녕 군인들이 좌지우지하는 군국주의 내각으로 전락했다. 현역 장군들이 육해군대신이 됨은 물론 총리 대신에 군출신들이 잇따라 임용되었다. 이에 따라 군사 예산은 날로 증가했다. 군 세력들은 언론계와 산업계와 국회도 압력과 회유로 장악했다. 당시 신문들은 육해군의 활동을 열렬히 지지하며 국회의 군비 확장 반대파를 견제했다.
사카이야 씨는 이러한 군인 공동체화와 군대 이기주의는 결국 군대 본래의 기능인 ‘전투력의 현저한 저하’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왜 그런가. 군인 공동체화로 인해 유능한 개혁적 인재들이 등용되지 못하고 조직 이익에 충성하는 무능한 인물들이 조직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 전에 일본 내에서 가장 우수한 청소년은 육군 유년학교와 해군 병학교를 거쳐 육해군사관학교에 지망했다. 이들이 공동체화 한 군장교가 되자 그 우수한 자질이 국가를 위해 발휘되기보다는 조직의 목적에 헌신하는 인간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그들 중에서 합리적이고 국가 전체를 생각하는 인재들이 없진 않았으나 다른 조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과격하고 고집스런 인물이 아래 사람들의 추앙을 받아 승진되고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사카이야 씨는 일반적으로 조직에 속한 구성원이 우수하면 그 조직은 당연히 우수할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우수한 개인이 모인 공동체화된 조직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최고의 엘리트들로 구성된 공동체화 된 조직은 창조성을 거부하는 내부 지향성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공동체화 된 조직에서는 ‘창조성’을 단합을 깨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공동체 내부의 다수 의견이 정의이자 정답이 되고, 창조성을 발휘하는 사람은 이단아로 취급된다. 이 때문에 종래의 경험과 관례만 중시되고 이를 착실하고 꼼꼼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 출세한다. 이로 인해 일본 육해군은 무기의 변혁과 작전의 유연성을 잃고 말았다고 그는 말했다.
일본 육해군은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작전을 변경하지 않고 2차대전 종전까지 육군은 육박전으로 해군은 함대 결전을 고수하다 패전했다고 그는 분석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부처 이기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이기에 소개한다.
박 당선인은 부처 이기주의를 뿌리뽑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과 경찰의 싸움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번에 인수위에 반기를 든 외교부 공무원이나, 지난 해 검경 싸움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검찰의 검사들은 최고의 엘리트들로 별도로 선발되고 별도로 연수교육을 받는다. 경찰의 ‘독립’도 따지고 보면 경찰대학 출신들이 본격적으로 상위직을 차지하면서부터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이와 같은 부처 이기주의를 더욱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검찰 출신 정치인들과 경찰 출신 정치인들, 외교부 출신 정치인들, 여기에 여야당이 당파적 이해에 따라 어느 한편을 들고, 언론도 가세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이전투구로 변해버린다는 점이다. 이런 부처 이기주의가 득세하면 국민 전체의 이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만다.
한국 기자들은 부처 출입처를 중심으로 취재하기 때문에 부처 이기주의 논리에 놀아나기 쉽다. 더욱이 전문기자와 프리랜서 기자들이 거의 없는 한국 기자들은 국민 전체 입장에서 판단하는 통합적 안목과 지식이 부족하고, 언론 역할에 대한 인식이 천박해 공무원들과 국회 상임위, 이익단체들의 커넥션을 꿰뚫어보지 못하거나 그들의 논리 싸움에 우왕좌왕한다.
임명직 장관이 국민의 투표로 뽑힌 당선자에게 항명한다는 것은 용서받기 어렵다. 이번 정권에서는 공무원 조직의 개방화를 가속해야 한다. 공직 사회의 상하부에 외부 전문가 수혈이 보다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개방적 임용제도가 실질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선발제도도 획기적으로 바꿔서 지방대학과 비명문대학 출신들을 일정 수 이상 뽑아 특정대학 출신들이 요직을 독식하는 것을 뿌리뽑아야 한다. 순혈주의는 창조성과 개혁성의 싹을 아예 자라지 못하게 하는 독버섯이다.
더불어 언론은 부처 이기주의에 놀아나지 말고 두 눈을 부릅뜨고 그 폐해를 지속적으로 지적하고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