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 우려가 불거진 속에서도 주가연계증권(ELS)을 비롯한 파생결합증권의 발행 잔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11일 금융당국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5일 기준 ELS와 DLS(협의의 파생결합증권)를 합친 총 파생결합증권 발행 잔액은 100조1057억원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ELS(원금 보장형 ELB 포함) 발행 잔액은 68조3314억원이었고 석유, 금·은 등 상품가격, 금리 등을 기초 자산으로 한 DLS(원금 보장형 DLS 포함) 발행 잔액은 31조7743억원이었다.
금융투자업계의 대표적 재테크 상품인 주식형 펀드의 총 설정액이 82조원대에 머무르는 점을 고려하면 파생결합증권의 발행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이에 파생결합증권이 증권사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하며 한국 금융 시스템 전반을 뒤흔들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생결합증권은 그간 증권업계에 연간 수천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작년 3분기부터는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증권사들은 세계 증시의 급등락 와중에 ELS의 헤지(위험 회피) 여건이 나빠져 파생상품 운용 과정에서 1조3187억원의 손실을 냈다.
특히 한화투자증권은 작년 166억2000만원의 영업손실을 내고 적자로 전환했는데, 시장에서는 자체 ELS 헤지 물량을 늘리다가 손실이 커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올해 들어서도 중국 증시 폭락을 시발점으로 한 세계 증시의 급락 사태로 인해 증권사들이 작년에 못지않은 헤지 비용을 들이고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추가적인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나아가 원금 손실을 본 ELS, DLS 가입 고객의 불만이 급증함에 따라 향후 증권사들의 전반적 사업 기반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금융 소비자 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은 파생결합증권의 불완전 판매 문제를 제기하면서 피해자들을 모아 집단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파생결합증권으로 인해 증권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증시의 추가 급락, 고객들의 중도 해지 사태 등의 극단적 상황을 적용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증권사들의 건전성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ELS 발행 잔액은 49조4000억원으로 국내 증권사 총 자기자본의 116.2%, 총자산의 13.6%에 해당했다.
그러나 잔존하는 파생결합증권의 만기가 대부분 2018년에 집중되는 가운데 이때 증권사들이 ELS에 편입한 자산을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놓게 되면 채권 가격이 급락하는 등 시장의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2018년 위기론'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특히 자기 자본 대비 ELS 발행 잔액 비율이 200% 이상으로 높은 신영증권, KB투자증권, 대신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의 자본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ELS를 발행한 자금으로 사들인 채권이 제값에 팔리지 않으면 증권사들은 그만큼 손해를 떠안아야 해 자산 건전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통상 증권사들은 ELS를 발행한 자금 중 대부분을 채권에 투자하고 나머지를 선물·옵션 등 파생에 투자해 고객에게 약정한 수익률을 맞추고 있다.
한국은행은 작년 11월 낸 보고서에서 증권사들이 고객에게 제시한 높은 수익률을 맞추려고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저유동성·저신용 등급의 채권 규모를 늘리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금융위기 등 심각한 충격이 발생하면 증권사들이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ELS는 증권사들이 자기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한 무보증 회사채의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증권사의 수익성이 악화해 현금 흐름이 나빠지고 고객의 중도 해지 사태까지 겹치면 이론적으로는 지급 불능 사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고자 최근 증권사들이 ELS로 받은 돈을 고유 자산과 구별해 관리하도록 강제하기로 한 상태다.
금융위는 지난달 금융투자업 규정을 개정, 파생결합증권으로 조달한 자금은 다른 고유 재산과 구분해 회계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ELS 최종 만기가 2018년 이후 집중화돼 이 시기 증권사 유동성 위험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개별 증권사별 대응능력 등을 감안하여 필요한 경우 신용등급 평가에 적절히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