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의 화마가 휩쓸고 간지도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경제는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제에는 하방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다. 유로 지역의 재정위기가 장기화되면서 경제주체의 신뢰가 저하되고 있다. 더욱이 디레버리징(부채축소)이 진행되고 있어 유로 지역의 경기가 급속히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은 과도한 재정 지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이 재정 지출에 대한 견해 차이로 충돌하고 있고, 오바마 대통령의 지도력이 약화되고 있다. 정부의 업무일시중단 사태도 발생했으며, 부채 한도 상향 조정에 대한 논란도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양적 완화 정책으로 금융여건이 호전되고, 주택경기가 개선되고 있으나, 재정 및 고용 문제로 미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일본은 공격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일본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위축된 세계 시장에서 수출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준엄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상반되고 혼란스러운 정책 기조를 내놓음으로써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잠재 성장률은 1990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1987년 이후 노사갈등이 표면화되었으며, 사회적 갈등이 신속하게 해결되지 못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조정 비용이 상승하였다. 더욱이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두 번의 경제위기로 인해 소득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위기가 발생하면 상위 10%의 가계 소득보다 하위 10%의 가계 소득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하락한다. 경제 위기와 고비용으로 소득불평등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대증요법적 정책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대증요법을 위해 사회복지지출을 증가시키면 경제 성장률이 하락한다. 또한 조세부담이 증가해도 경제 성장률이 하락한다. 그러나 경제 성장률이 하락해서 실업이 증가하면, 소득불평등이 악화된다. 결국 저성장의 기조 속에서 대증요법적 정책을 실시하면, 경제 성장을 악화시켜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사회복지지출 수요를 다시 증가시킨다. 결국 악순환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재정악화로 인한 경제 위기를 잉태하게 된다.
정치논리는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도 못하면서 경제적 폐해를 야기한다. 일례로 KTX 천성산 터널 공사로 도롱뇽이 죽는다고 천성산 내원사에 거처하던 지율 스님이 단식을 하셨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공사 중단을 지시했고, 이후 공사 지연으로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였다. KTX가 개통된 지 수 년이 지난 지금, 천성산 습지에는 아직도 도롱뇽이 살고 있다고 한다.
레미콘 사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어 중소기업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분리발주를 통해서 중소기업의 수익을 올리도록 정책적 배려를 했다. 좋은 정책이지만 그러나 이로 인해 동양그룹 사태가 발생했다는 주장도 있다. 동양그룹은 레미콘 사업 인수에 5000억 원을 투자했지만 경기 침체로 인해 2012년 한해에만 2,945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동양그룹 사태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만큼 향후 철저한 조사를 통해 책임소재를 밝혀야 한다. 그러나 동양그룹 사태가 일어나자 정치권은 사태의 원인을 분석하기보다는 금산분리와 상호출자 금지, 그리고 의결권 제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발생원인은 정치권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동양그룹이 주요 지배구조는 상호출자가 문제되는 구조가 아니다. 더욱이 금산분리와도 관계가 없다. 동양증권 등 비은행 금융계열사는 비금융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물론 동양레저가 동양증권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비은행 금융계열사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
이에 따라서 불완전 판매가 있었는지 조사하고 불완전 판매가 있었다면 현행법에 의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가 있다. 현행법에서도 금융계열사의 대출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동양그룹의 부채는 대부분 시장성 차입금으로 시장에서 조달되었다.
현재현 회장의 동양증권에 대한 지분이 0.71%이기 때문에 의결권 제한과도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태이기 때문에 정치권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만약 타당성도 없는 악법이 관계가 없는 사태를 빌미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수해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고령화가 진행되어 활력을 잃고 있으며 국제적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성장동력의 확보와 함께 경제 시스템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로 과거와 같이 생산요소를 증가시켜서 성장하는 전략은 유효하지 않다. 따라서 총요소생산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는 효율적인 갈등 해소 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다. 밀양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갈등이 증폭되어 우리 모두가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합리적인 노사관계도 강화돼야 한다. 현재와 같은 고비용 구조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 기술생태계도 개혁의 대상이다.
국가 연구개발 지출도 정치적 영향을 받아 국가혁신체제의 효율성이 떨어져 있다. 효율적인 국가혁신체제를 통해서 실질적인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기술혁신이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끌어야 한다.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는 고등교육을 받은 국민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기업들이 혁신하고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타당성도 없는 규제 법안을 경제 민주화라는 미명하에 추진해서는 우리가 필요한 경제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없다. 우리나라 경제는 위기의 기로에 서 있다. 인도가 화성을 탐사하고 중국이 우주선을 쏘고 있다.
우리나라의 특허 수는 1위 국가에 대비해 6%에 불과하다. 고비용 구조에서 국가기술력도 없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없다. 하루 빨리 국민들에게 분명한 정책기조를 제시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길 바란다. /양준모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 글은 한국경제연구원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