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세헌기자] 올해 정부가 해외시장으로 도약하려는 국내 강소기업(히든챔피언)을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을 내세웠지만, 산업계에선 우리나라 정책이 오히려 히든챔피언의 성장의 제한요소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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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든챔피언 개념을 정립한 헤르만 지몬 교수(사진)는 세계시장 점유율 1~3위, 매출액 50억 유로(한화 6조원) 이하이면서 대중 인지도가 낮은 기업을 히든챔피언으로 규정했으나,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2014년 10월 히든챔피언 육성 대책과 한국형 히든챔피언 63개의 현황을 발표하면서 한국형 히든챔피언을 중소·중견기업에 국한했다. / 연합뉴스 |
우리나라 히든챔피언 육성정책이 기존 중소기업 지원정책에 머물고 있으며, 중소·중견기업으로 한정된 히든챔피언 정책이 오히려 정부 지원책에만 안주하게 만드는 만큼 규모별로 늘어나는 성장 장애물을 줄여 나가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22일 산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히든챔피언이 처한 경영환경 및 제도적 문제로는 중소·중견에 한정된 개념정립의 문제, 기업규모에 비례해 늘어나는 성장걸림돌 규제, 영속성을 저해하는 승계문제 등이 꼽힌다.
히든챔피언인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진입하게 되면 중단되거나 축소되는 지원제도는 세제 분야 38개, 수출·판로 분야 10개 등 총 80개에 이른다.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제도의 경우에도 기존 25%에서 15%로 축소됨에 따라 중견기업에 진입한 기업들의 조세부담이 높은 편에 속한다.
특히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3846개 기업 가운데 다시 중소기업으로 회귀한 곳이 2013년 기준 76개사에 이르고 중소기업유예제도 적용기업 중 58.9%가 중소기업으로 복귀를 원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의 한국형 히든챔피언 기준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적인 히든챔피언 규모 기준은 계열 관계, 지분 구조, 자산 규모 등에 관계없이 매출액 약 6조원 이하인 기업인데 반해, 우리 정부는 한국형 히든챔피언을 중소·중견기업에 국한시키고 있다.
이에 한국형 히든챔피언으로 선정된 63개 기업의 평균 매출액(761억원)은 전세계 히든챔피언의 매출액(약 4000억원, 3억2600만 유로)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중소·중견기업에 한정한 우리나라 히든챔피언 기준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세계적인 히든챔피언의 매출액 기준인 약 6조원(50억 유로)은 EU 중소기업 기준(매출액 5천만 유로)의 100배로, 작은 기업을 의미하지 않는다.
히든챔피언인 독일 풍력발전 기업 에네르콘(Enercon), 자동차 케이블을 생산하는 레오니(Leoni)의 매출액은 각각 약 5조원, 4조원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이들 기업이 육성 대상이 아닌 규제의 대상이 된다.
히든챔피언 개념을 정립한 헤르만 지몬(H.Simon) 교수에 의하면 세계시장점유율 1~3위(또는 소속대륙 1위), 매출액 50억 유로(약 6조원) 이하이면서 대중 인지도가 낮은 기업이 히든챔피언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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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뉴스 |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정부의 규제정보포털의 등록 규제와 상법상 권리제한 등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3개 법령에서 98개의 자산규모별 규제가 존재한다. 이에 반해 히든챔피언 강국인 독일은 중소기업 육성정책 외에 규모별 차별정책이 없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외국 기업들과 경쟁하기 전에 자산 규모 증가에 따른 성장통 규제에 발목을 잡히는 실정이다. 대·중소기업 이분법적 지원제도 80개까지 감안하면, 총 47개 법령 178개의 성장 걸림돌이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자산규모별 규제 수는 자산 3000억원일 경우 28개, 자산 5000억원 이상 40개(12개 증가), 자산 2조원 이상 56개(16개 증가), 자산 5조원 이상 86개(30개 증가), 자산 10조원 이상 98개(12개 증가) 등으로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장애물이 증가되는 추세다.
우리나라 기업은 자산총액이 5000억원을 넘게 되면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에도 적용돼 중소기업과 경합이 심한경우에는 사업축소, 확장자제 등 사업 활동의 불확실성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기업의 경우 상법에 따라 감사위원 선임 시 보유지분과 무관하게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로, 경영권과 주주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자산총액 5조원 이상 기업집단은 공정거래법에 의해 상호출자제한기업으로 지정돼 소유구조와 영업형태를 직접적으로 제한받게 된다. 여기에 국가 기관이 발주하는 소프트웨어사업에 참여하거나 국가가 지정하는 뿌리기술 전문기업으로 지정될 기회도 박탈된다.
가업승계 지원을 위해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고 있는 독일과 다른 점도 우리나라 히든챔피언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의 최고세율은 배우자, 자녀에 상속할 경우 2600만 유로(약 300억원) 이상 구간에서 30%이나, 우리나라 최고세율은 30억원 이상 50%다.
우리나라 상속세제는 독일의 취득과세방식과 달리 유산과세방식을 적용한다. 독일은 부모의 상속재산이 많더라도 개별 자녀의 상속금액이 적으면 낮은 세율이 적용되나, 우리나라는 피상속인의 재산총액이 클 경우 개별 상속금액이 적더라도 일률적으로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다.
독일은 피상속인·상속인의 관계에 따라 차등 세율을 적용하며, 상속자가 배우자, 자녀, 손자일 경우 최고세율은 30%이고, 4촌 이상이거나 혈연관계가 아닌 경우에는 50%의 상속세율을 부과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혈연관계 여부에 관계없이 세율 구조가 동일한 특징을 지닌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부가 연구개발비(R&D)와 교육 및 컨설팅, 마케팅 비용 등 다양한 방법으로 히든챔피언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은 바람직하다”면서도 “다만 국내 히든챔피언을 육성하고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규모별 규제 완화, 성장 유인형 지원제도 마련, 상속세제 개편 등을 통한 기업 경영환경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