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기를 들고 나섰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된다. 주식 대량보유 공시 의무인 ‘5% 룰’을 위반한 혐의다.
23일 금융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24일 정례회의에서 엘리엇에 대한 제재안을 의결할 방침이다.
앞서 증선위 자문기구인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는 엘리엇을 검찰에 통보키로 한 원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증선위도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 확실시된다.
금융당국은 이날 증선위의 결정이 나는 대로 검찰에 엘리엇의 혐의 내용을 통보하고 조사 자료 일체를 넘길 계획이다.
이번 조사를 맡은 금융감독원 특별조사팀은 엘리엇이 작년 삼성물산 지분을 매집하는 과정에서 파생금융 상품인 총수익스와프(TRS)를 악용, 몰래 지분을 늘린 것이 '5% 룰'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TRS는 주식 보유 상황에 따른 수익이나 손실이 계약자에게 돌아가는 구조의 파생상품이다.
가령 A펀드가 B증권사에게 주식 1000억원어치를 사달라고 하는 내용의 TRS 계약을 맺으면 B증권사가 주식을 사고 손실은 A펀드에 귀속되는 방식이다.
A펀드는 사실상 무자본으로 큰 투자 기회를 노릴 수 있고, B증권사는 투자 손실 위험은 고객에게 넘긴 채 거래액의 일정 금액을 수수료로 챙길 수 있다.
엘리엇은 작년 6월4일 삼성물산 지분 7.12%(1112만5927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면서 시장에 전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 재편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반대를 주장하며 주총에서 표대결을 벌였지만 패배했다.
당시 엘리엇은 작년 6월 2일까지 삼성물산 주식 4.95%(773만2779주)를 보유하고 있다가 이튿날 보유 지분을 2.17%(339만3148주) 추가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국은 엘리엇이 TRS 계약을 통해 실질적으로 지배한 지분까지 더하면 6월 4일이 아닌 5월 말께 이미 대량 보유 공시를 했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재무적 투자 차원에서 TRS를 활용하는 것은 투자자의 재량이지만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공격적 경영 참여를 염두에 두고 TRS 계약을 동원해 실질적 지분을 늘리는 것은 공시 제도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라는 판단이다.
엘리엇은 TRS 계약을 통해 메릴린치, 시티 등 외국계 증권사들이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이게 하고 나서 대량 보유 공시 시점에 계약을 해지하고 이를 돌려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5% 이상 보유 사실을 공시하도록 한 공시 규정은 적대적 인수 합병이나 경영 간섭으로부터 회사가 방어권을 행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엘리엇의 행위가 허용되면 일반 투자자들도 적절한 투자 기회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미국과 독일 등의 판례를 조사한 결과 TRS를 활용한 지분 확대 행위에 대한 처벌 사례를 다수 발견했다.
다만 국내에서 편법 TRS 활용이 적발돼 제재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사건을 넘겨받고 나서 추가 법리 검토 작업을 벌이고 나서 엘리엇에 대한 본격적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엘리엇 측의 주요 인물이 모두 해외에 있어 이들이 입국해 조사를 받지 않으면 검찰이 수사를 진행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 기소중지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도덕적 명분과 시장의 평판을 중요시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지명 수배자'라는 오명을 쓰면서까지 수사를 거부할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 사법 당국과 엘리엇 사이의 치열한 법리 공방이 펼쳐질 전망이다.
엘리엇 측 관계자는 "엘리엇은 한국 금융당국이 위법이라고 한 부분에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최종 판단이 나오고 나서 구체적인 대응 방향을 결정하게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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