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중금리 대출시장이 우려 속에서도 조금씩 활성화 되고 있는 건 반가운 일이다. 특히 '금리절벽'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서민들에게는 동아줄과 같다. 2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중금리 대출상품인 '사잇돌 대출'은 출시일인 지난 5일부터 20일까지 보름간 총 3163건, 323억 8000억 원의 판매실적을 보였다.
사잇돌 대출에서조차 거절을 당해 볼멘소리가 나오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
|
|
▲ SBI저축은행의 중금리 대출상품 '사이다'는 출시 7개월 만에 실적 900억 원을 돌파하면서 중금리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SBI저축은행 |
문제는 이 좋은 분위기가 '시한부'라는 점이다. 그동안 시중은행이 중금리 대출시장에 관심을 갖기 힘들었던 이유는 상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금융당국은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SGI서울보증을 사잇돌 대출에 참여시켰다. SGI의 보증 한도는 5000억 원이다.
바꿔 말하면 5000억 원 한도가 채워짐과 동시에 사잇돌의 소임도 끝난다는 의미다. 출시 후 보름동안 사잇돌 대출의 반응이 좋았다는 건 그만큼 5000억 원 한도가 다 되는 시점도 앞당겨졌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중금리 시장이 활성화될 때쯤 한도액인 5000억 원이 소진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은행권 전체가 참여하는 대출상품의 한도가 5000억 원이라는 건 매우 작은 수준"이라면서 "저신용자들이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잇돌의 메리트는 '소수의 잔치'로 끝나고 말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대안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중금리 대출시장의 '원래 주인'인 저축은행이 있다. SBI저축은행의 중금리 대출상품 '사이다'는 출시 7개월 만인 이번 달에 누적실적 900억 원을 돌파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오는 9월에는 부산‧경남‧대구‧광주은행 등 4개 지방은행과 저축은행에서도 사잇돌 대출이 출시될 예정이다.
사잇돌 출시 이후 저축은행들은 중금리 대출상품에 더 많은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이다' 판매 목표를 2000억 원으로 잡고 공격적인 마케팅에 들어간 SBI저축은행은 물론 웰컴저축은행, JT친애저축은행 등이 중금리 시장에 발 벗고 나섰다. 사잇돌 대출을 포함한 경쟁의 활성화가 서민들의 편익을 증대시키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 것.
현재 상황에서 시중은행의 사잇돌 대출 잔액 5000억 원이 소진되면 현재의 경쟁 구도에서 시중은행이 빠지게 되고 결국 모든 상황은 과거로 회귀하는 모양새가 된다.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에 새로운 경쟁자를 육성하는 편이 서민들을 위한 일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새로운 선수'로 투입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은 바로 인터넷전문은행이다. 말 그대로 온라인에만 존재하는 금융기관으로, 현재 카카오뱅크와 KT계열의 K뱅크가 늦어도 올해 연말까지는 은행업 본인가를 신청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이 준비 중인 서비스는 전에 없는 혁신이다. 예금이자를 다양한 포인트나 상품권, 심지어 '음원'으로 제공하는 발상의 전환을 준비 중이다. 카카오톡 친구끼리는 계좌번호 입력 없이 쉽게 송금이 가능한 서비스도 설계되고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전문은행 역시 중금리 대출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활성화되면 중금리 대출시장에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플레이메이커'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
|
▲ 은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인터넷전문은행이 제2의 삼성전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 |
그러나 인터넷전문은행은 현재 규제에 덜미를 잡혀 있다. 비금융 회사는 의결권이 있는 은행 지분을 4%까지 밖에 보유하지 못한다는 은행법 조항 때문에 K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연내 출범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행법으로도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시킬 수는 있지만 카카오와 KT가 '대주주'로 설 수 없어 활동에 제약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현행 4%를 50%까지 완화하는 조항으로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결국 무산됐다. 20대 국회로 넘어온 현재 상황에서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과 강석진 의원이 다시 한 번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인터넷전문은행 '반대'를 당론으로 내세우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채이배 의원 등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의 반대 논리는 '재벌의 사금융화 우려'다. 당국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의견을 바꾸지 않고 있다.
돌아보면 인터넷전문은행은 지난 2014년 국정감사에서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국회의원들에게 "핀테크 시대를 준비하고 있느냐"며 질타를 받으면서부터 나온 얘기다. 국회의원들이 채근해서 추진된 인터넷전문은행이 얄궂게도 국회의원들에 의해 발목이 잡혀 있는 희한한 상황이다.
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한 강석진 의원 측은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이) 더 이상 뒤쳐질 경우 국내시장은 해외은행에 잠식당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김용태 의원은 "인터넷전문은행이 제2의 삼성전자가 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재벌의 사금융화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상태로 개정안 통과를 추진하는 데도 계속 '반대'로만 일관한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옛 속담의 사례가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반대론자들은 과연 어떤 쪽이 진짜 서민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