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전날(23일) 오후 2시께부터 자정 넘어서까지 진행된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은 야권이 단독으로 안건에 올린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을 막기 위한 여당의 '지연작전'과, 야권의 반말·고성 섞인 야유·삿대질 등 노골적인 의사진행 방해와 여당의 맞대응 등이 뒤섞여 난장판을 연출했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으로서, 여야 협의 없는 '차수변경'은 물론 해임건의안 야권 단독 상정과 처리 전 과정에 일방적으로 협조한 정세균 국회의장은 새누리당으로부터 "공정한 진행을 책임질 의장이 아니라 아주 비열하고 교활한 의원"이라는 등 사퇴 요구를 거세게 받았다.
다수야당의 '힘의 논리'에 따라 김 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뒤 새누리당은 정부의 해임건의안 수용 반대 촉구와 국회 의사일정 전면 거부를 선언해 당장 월요일(26일)부터 진행되는 국정감사가 명분 잃은 '반쪽 국감'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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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새벽 야권 단독으로 개의된 본회의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전날과 달리 의사일정 제1항으로 상정됐다. 이후 무기명 표결이 진행, 야당 및 무소속 의원 170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가(可) 160표, 부(否) 7표, 무효 3표로 김 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됐다.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무기명 투표를 거쳐 재적 의원 과반수(151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지면 가결된다./사진=미디어펜 |
이번 해임건의안 파동으로 정치권의 개원 일성이자, 추석 연휴중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가 미국 방문에서 한미동맹과 안보에 입을 모으며 기대를 높였던 '협치'가 일주일도 안 돼 무색해진 대목이다.
앞서의 방미 일정조차, '황제대출' 등 일련의 의혹이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게 밝혀지고도 김 장관에 대해 야당 의원 132명이 발의한 해임건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해선 안 된다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요구를 정 의장과 야당 원내대표들이 수용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정 의장이 '국회법대로 상정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서자 새누리당은 전날 오전 9시부터 의총을 소집, 정오쯤까지 진행하며 당초 오전 10시 개의 예정이던 본회의 참석을 미뤘다.
국회 사무처에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무제한 토론) 신청서까지 받아갔지만 정 의장이 오후 2시쯤 본회의 개의를 선포해버려 대정부질문이 시작, 작전은 개의 전 신청서를 제출해야 필리버스터를 허용하는 국회법 규정 탓에 무산됐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의 '짧은 질문'과 국무위원들의 '긴 답변'을 연계한 지연작전에 돌입했다. 국회법상 질문자는 발언시간이 15분 제한이고, 국무위원에겐 제한이 없다. 실제로 새누리당 첫 질의자인 정우택 의원은 평소같으면 20분 내외 소요되는 대정부질문을 50분 가까이 끌었다.
이는 당일 본회의 의사일정 제1항인 대정부질문으로 날짜를 넘겨 회의 차수변경 및 산회-개의 절차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제3항인 김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을 저지할 수단을 찾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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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진행된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의 대정부질문을 방해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정숙을 요청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
정부-여당의 합법적 지연전략을 제지할 방법 없이 발을 구르던 야당에선 수시로 고성 반말이 섞인 야유와 비난을 보냈고, 새누리당에선 "합법적인 대정부질문을 막지 말라"거나 "조용히 하라"고 쏘아붙이며 양측에서 언쟁이 오갔다.
소란스러워질 때마다 정 원내대표가 의장석 앞으로 나서 정 의장에게 야당 측의 정숙을 요청할 것을 주문하는 모습이 연출됐고, 그 때마다 정 의장은 마지못해 "의원들은 대정부질문을 방해하지 말고 경청해달라"고 더민주 의석에 당부했다.
정 의장은 본회의 진행 도중 3당 원내대표를 불러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야권이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연장·어버이연합 청문회 개최,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안종범 정책조정수석 국감 출석 등을 해임건의안 철회 조건으로 내세워 '정치 흥정'을 벌이자 정 원내대표는 10여분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오후 7시50분쯤부터 의장단·의원들과 달리 본회의 진행 도중 회의장을 이탈할 수 없는 국무위원들에게 '식사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새누리당의 요구가 빗발쳤다. 정 의장은 회의 진행을 고집하던 끝에 수용, 김석기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 순서를 앞두고 8시28분쯤 30여분간 정회를 선포했다가 9시1분쯤 속개했다.
정부여당의 지연전략에 반발해 야당 의원들은 역으로 정부측에 질문 자체를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나왔다. 특히 12번째 질의자 소병훈 더민주 의원은 일방적으로 위안부 문제 등 현안을 두고 정부비판만 이어가는 '질문 없는 대정부질문'을 연출했고, 여당으로부터 "궁금하면 좀 (정부에) 물어보세요"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오후 10시20분쯤 본회의장 발언대에 선 마지막 질의자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은 지연전략의 '화룜점정'이었다. 각 국무위원들에게 '내란음모' 이석기 사건의 전말, 노동개혁법·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경제효과,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의 법적 문제여부, 정부3.0의 전반, 정부의 복지예산 운용 및 정책에 관해 설명해달라는 원론적 질문을 잇따라 쏟아냈다.
질문 초기엔 더민주 의원들이 바로 전 순서인 소병훈 의원을 격려한다는 핑계로 의석에 앉지도 않은 채 산만한 분위기를 연출하자 질문을 중단, 발언대에서 나와 물을 마시며 '시간끌기'로 보복했다. 국무위원들의 긴 답변을 막으려 야당 의원들이 고성을 내면 "국민들이 (정부측) 설명을 듣고싶어하신다"고 맞받거나 발언을 접고 정 의장에게 '조용히 시켜달라'고 하는 등 능청스럽게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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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시작된 대정부질문 마지막 질의자인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연단 앞)이 24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의 일방적인 대정부질문 종료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연단에서 내려가지 않았다./사진=미디어펜 |
자정이 다가올 수록 야권은 더욱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고, 여당도 더욱 격앙됐다. 여야 의석 사이에선 "조용히해!"와 "반말하지마!"라고 서너차례 주고받으며 기싸움을 하는 의원들이 있었고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이우현 의원을 향해 "부끄러운줄 알어! 부끄러운줄 아시라고!"라고 윽박을 지르기도 했다.
정 원내대표가 '야당의 정숙을 요청하라'며 의장석 앞으로 나서는 빈도도 늘었다, 정 의장은 수차례 이를 수용했다가도 오후 11시43분쯤 결국 정 원내대표에게 "원내대표가 대정부질문을 방해하지 말라"고 여전히 소란을 피우고 있는 야당의 역성을 드는 모습을 보였다.
이 의원의 대정부질문이 끝나지 않은 채 자정을 3분 남겨둔 시점, 정 의장은 돌연 "국회법 제77조에 따라 교섭단체 협의를 거쳐 차수를 변경시켜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통보했고 국무위원들에게도 "출석 의무는 12시 부로 종료됐다"며 대정부질문을 강제로 종료시켰다.
국회법 77조가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들과 협의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회의를 개의'하도록 한 점을 무시하고, 의장 단독으로 산회 선포도 없이 개의를 선포한 셈이다. 해임건의안 표결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에 정 원내대표는 연단으로 나와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무너지고 있다"며 "헌정사에 치욕적인 오점을 남긴 날치기 의장이다. 의장이 어떻게 독재를 하느냐"고 항의를 거듭했고, 새누리당 의원들 다수가 연단 쪽으로 나와 정 의장에게 "물러나라"고 서너차례 일제히 외치며 사퇴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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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균 국회의장이 24일 0시(자정)을 3분여 앞두고 여야 교섭단체 대표의원과의 협의 없이 날짜변경에 따른 본회의 차수변경, 대정부질문 종료를 일방적으로 선포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거 항의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
24일 0시20분쯤 정 원내대표는 정 의장을 향해 "협치는 끝났다"며 "야, 부끄러운 줄 알라"고 쏘아붙이며 여당 의원들을 데리고 본회의장을 떠났다. 이 의원은 "3분 남았는데 다 하고 가겠다"고 연단을 지켰지만 이내 마이크 전원이 나갔다.
곧바로 야권 단독으로 개의된 본회의에서 박완주 더민주 원내수석부대표가 김 장관 해임건의안 제안설명을 할 때 마이크 전원은 돌아왔다. 이후 무기명 표결이 진행, 야당 및 무소속 의원 170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가(可) 160표, 부(否) 7표, 무효 3표로 김 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됐다.
본회의에 불참한 새누리당은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이번 해임건의안 처리를 '국회를 뒤흔드는 날치기 만행'으로 규정, 여야 협의를 무시하고 이를 주도한 정 의장과 더민주에게 "무효를 선언하고 국민께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정 의장 사퇴촉구 결의안 제출 ▲국회 윤리위 제소 및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국감 등 국회 의사일정 전면 거부 ▲권한쟁의 심판 등을 추진키로 의견을 모았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법적 요건, 절차와 내용, 명분조차도 상실한 이번 해임건의안의 '절대 수용불가'를 공식요청한다"고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야권의 표결 강행을 막지 못한 데 책임을 지고 직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정 의장을 겨냥 "비열하고 교활한 의원으로, 사퇴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며 국회의장으로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맹비판했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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