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에 분사와 주주 배당 등을 요구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6일 전자업계와 증권업계에서는 이번 엘리엇의 분사 요구로 삼성전자가 인적분할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그간 삼성전자를 삼성전자 홀딩스(지주회사)와 삼성전자 사업회사로 쪼개는 인적분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필수적인 절차로 여겨졌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0.59%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지분은 의결권 없는 자사주(우선주)가 15.7%로 가장 많고 이어 보통주인 자사주가 12.8%다. 최대주주는 7.43%를 보유한 삼성생명이고, 이어 삼성물산이 4.18%, 이건희 삼성 회장이 3.55%, 삼성화재가 1.30%,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0.76%, 이재용 부회장이 0.59%를 각각 갖고 있다.
자사주를 제외한 삼성 측 지분율을 모두 합하면 18.15%(삼성생명 특별계정 0.54% 포함)다. 반면 외국인 지분율은 50%를 넘는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기업가치가 크게 높아지면서 이 부회장이 지분 확대에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지분 1%(164만327주)를 확보하려면 주당 가격을 160만원으로 쳐도 2조6245억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은 이 같은 비용 부담 없이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물산 등 삼성 측의 지분을 늘리는 방안으로 거론돼 왔다.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삼성전자 투자부문(홀딩스)과 사업회사 간 주식 스와프(교환)→자사주 의결권 부활→삼성전자 홀딩스와 통합 삼성물산의 합병'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밟으면 이 부회장 측이 삼성전자 홀딩스의 지분을 40%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삼성전자 홀딩스는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지분을 30% 수준까지 높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을 타이밍과 결단의 문제라는 시각이 많았다. 언제이냐의 문제일 뿐 결국은 삼성전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란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두고 삼성 측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엘리엇 측이 이런 분할 시나리오를 권유하고 나선 것이다.
엘리엇은 삼성전자 이사회에 보낸 서한에서 삼성전자와 오너 일가가 이룬 과거 업적을 지지하고, 지주 전환을 통한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대의 필요성도 인정했다.
더 나아가 '삼성전자를 홀딩스와 사업회사로 분리→삼성전자 홀딩스와 사업회사 간 지분 스와프·공개매수 통해 지주 설립→삼성전자 홀딩스와 삼성물산의 합병→금산 분리를 위해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금융 지주회사 설립'이라는 구체적인 지배구조 개편 방안까지 제안했다.
엘리엇은 주주 배당 정책을 개선할 것도 요구했다. 삼성전자를 분할한 뒤 삼성전자 사업회사가 30조원의 특별배당을 하거나 주당 24만5000원의 배당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또 연간 삼성전자 잉여현금흐름(FCF)의 75%를 지속적으로 주주 친화정책에 쓸 것도 주문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다소 과해 보인다면서도 "애플의 FCF 대비 주주 환원율 80%, 퀄컴의 FCF 대비 주주 환원율 75%를 고려해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상향하라는 요구"라고 풀이했다.
또 특수배당이 이뤄질 경우 주주인 삼성전자 홀딩스-삼성물산 합병법인, 삼성생명, 삼성화재, 오너 일가 등에게 전체 배당의 약 30%가 돌아갈 것으로 분석했다.
나아가 이 돈으로 삼성전자홀딩스-삼성물산 합병법인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엇은 또 분할된 삼성전자 사업회사를 나스닥에도 상장해 글로벌 유동성과 해외 투자자의 접근성을 확대하고,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투명성도 높이라고 요구했다.
이사회도 개선해 최소 3명 이상의 새 사외이사를 선임하면서 내부 임원 대신 해외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앉히라고 주문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 삼성 측에 적대적인 행보를 보였던 엘리엇이 느닷없이 이런 제안을 던진 속내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삼성전자의 주식 가치의 극대화와 주주가치의 제고가 꼽힌다. 당장 엘리엇이 서한에서 지적한 대로 이런 조치를 통해 삼성전자의 주가가 올라가면 삼성전자 주식 0.62%를 쥐고 있는 엘리엇도 주가 상승의 수혜를 본다.
배당 강화 역시 삼성전자의 주주인 엘리엇이 직접적인 수혜자가 된다.
결국 엘리엇이 삼성의 최대 고민인 지배구조 개편에 명분을 제공해 길을 터주는 대신, 주주 친화정책의 강화라는 반대급부를 노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편에서는 삼성전자로서도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과정을 겪으면서 쌓인 감정의 앙금 탓에 엘리엇의 제안에 뭔가 ‘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배당 강화 등 다른 외국인 주주들도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요구를 던져 자신의 우호 지분을 확대하려는 조처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미디어펜=김연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