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벚꽃대선은 촛불을 치켜 든 이들의 희망사항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벚꽃 대선이 치러지나 싶었지만 변덕스런 봄비 탓에 꽃비로 내려앉으며 벚꽃엔딩이다. 벚꽃을 보낸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이번엔 장미대선이 등장했다.
흐드러진 유혹의 벚꽃이나 화려한 꽃의 여신 장미나 모두 아름답다. 아쉽다. 안타깝기도 하다. 어쩌다가 벚꽃이나 장미가 이 어지러운 난세의 정국을 표현하는 대용어로 등장했을까. 장미대선이라 이름불리우기엔 어울리지 않는 선거판이다.
장미의 향기는 흩어지고 아름다움도 사라졌다. 지금 대선 판에는 그저 가시 돋친 후보들의 막말과 흑색 공세만이 난무하고 있다. 장밋빛 공약은 그야말로 장밋빛 희망고문이다. 검증이란 가면을 쓰고 상대 흠집내기와 유권자를 유혹하는 선동이 판친다.
정치혐오증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란 비상 상황 속에서 치러지는 조기 대선임에도 비상함을 느낄 수 없다. 지역감정이나 들먹이고 색깔론을 부추기는 등 품격과 도덕성은 온데간데없다. 권력을 향한 무자비한 무한투쟁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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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대 대통령선거 공식 유세 일정이 시작되는 17~18일 이틀간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정체성이나 정책대결이 아닌 네거티브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 이틀밖엔 안 된 18일에도 대선후보와 각 정당들이 쏟아내는 메시지는 살벌하다. '불안세력' '적폐세력' '친북세력' '배신자'가 난무한다. 정체성 없이 이해에 따라 오락가락하는가 하면 포장만 살짝 바꾼 말 뒤집기도 여반장이다. 도 넘은 가시 돋친 설전이 말실수를 부르기도 한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17일 광주에서 안철수 후보 지원 유세도중 "문재인이 돼야 광주의 가치와 호남의 몫을 가져올 수 있다"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지지 발언을 했다. 문재인 후보의 아들 채용과 재산의혹에 대한 비판을 가하다 안철수 후보를 지칭해야 할 대목에서 실수를 했다. 과열이 부른, 과욕이 빚은 과오였다.
18일에도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진영에서는 치열한 입씨름이 벌어졌다. 국민의당은 민주당의 검증공세를 쓰레기 수준이라고 몰아붙였다. 국민의당 김재두 선대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재인 대세론'이 붕괴하자 안 후보와 가족들을 향해 조폭, 신천지 등 파상 공세를 취하고 있다"며 "내용 또한 거의 쓰레기 수준에 불과하다"고 날을 세웠다.
문재인 후보의 민주당측은 안철수 후보 부인인 김미경 교수의 보좌진 사적 지시에 대해 "안 후보 부부에게서 '박근혜-최순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며 국정농단 사태를 빗댔다.
적폐청산과 국가대청소, 부역자 척결 등 혁명적 구호를 부르짖던 문재인 대표는 특별한 설명도 없이 슬그머니 '대통합'을 내세웠다.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의 '대연정'과 '통합'에 문 후보 지지자들은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문재인 후보는 대구 유세에서 "영남의 지지로 당선되면 박정희 전 대통령도 웃으실 것"이라고도 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이를 꼬집으며 "적폐세력과 손잡는다고 안 후보를 비판하던 말은 어디로 갔나"라며 페이스북을 통해 꼬집었다. 국민의당은 "문 후보의 본심이 바뀌었다고 보지 않고 단순한 선거 전략 치원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문재인 후보가 척폐청산의 프레임을 통합으로 바꾼 것은 안철수 후보에게로 기울어져 있는 중도·보수 표심을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문 후보는 준비된 후보론을 앞세워 '불안한 후보 안철수'를 강조하며 중도·보수를 공략하고 있다.
홍준표 후보 역시 유승민 후보와 보수 적통을 놓고 배신자 운운하며 기싸움을 벌였다. 홍 후보는 대구 방문에서 "좌파 셋에 우파가 하나가 나왔는데 선거를 못 이기면 정말 우리는 낙동강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긴다는 논란도 빚었다.
촉박한 대선 일정 탓에 안 그래도 '깜깜이 선거'다. 그 우려를 각 정당과 후보들이 부추기면서 대선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정체성이나 정책대결이 아닌 네거티브 공세로 선거가 날 샐 판이다.
막말과 흠집내기 공방은 후유증을 부른다. 광장의 민주주의를 정치로 끌어들인 그 책임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리고 광장은 언제나 열려 있음을 후보 진영과 후보들은 가슴에 새겨야 한다. 표퓰리즘을 노린 진정성 없는 발언이 부를 대가를. 장밋빛 희망고문의 책임을. 그리고 향기가 사라진 가시 돋친 장미의 전쟁이 부를 감동없는 드라마의 끝을.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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