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G20정상회의에 맞춰 ‘신베를린 선언’을 내놓기 직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탄도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주변국들의 입장차도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과거 북한의 도발 때마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서 크게 부딪치지 않고 형식적으로나마 국제공조의 틀 속에서 접점을 찾으려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자 미국은 “군사 옵션도 배제하지 않겠다”며 초강경 입장을 보였다. 이에 중국과 러시아는 “추가 대북제재에 반대한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리 의결을 무산시켰다.
미국이 군사 옵션까지 언급하며 강경모드로 돌아선 것은 중국 정부의 더욱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미국은 안보리에서 중국이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은 북한에 가장 치명적인 조처로 원유 공급을 차단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너무 극단적인 조치라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오히려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동시진행)과 ‘쌍중단’(雙中斷·북핵·미사일 도발 중단과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가 긴장 국면에 들어설 때마다 중국이 늘 해오던 쌍방의 자제를 촉구하는 행태로 여전히 북핵 문제에서 당사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핵 해결을 위한 더 강력한 대북 압박에 대한 요구를 받자 “북한과는 혈맹관계를 맺어왔고, 그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답변으로 응수했다.
한중정상회담에서 뜬금없이 혈맹관계를 부각시킨 이유는 그동안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공조해온 중국의 노력은 충분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문 대통령은 사드배치 문제와 북한 핵·미사일의 연관성을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사드는 전임 정부에서 결정된 일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에 있다”면서 “결론적으로 사드는 북핵과 미사일 도발로 인한 것이므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기간 중 북핵 해법을 찾아내면 사드 문제도 해결되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시 주석은 “결과적으로 북핵 문제는 한국과 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미국의 문제로 파악해야 하며, 중국에만 떠넘기지 말고 미국도 책임이 있으니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다만 두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란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좀 더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고, 북한이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응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한중간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시 주석은 남북대화 복원 및 남북간 긴장 완화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주도적 노력을 지지하고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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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일 오후(현지시간) G20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 시내 미국총영사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만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
이처럼 북한에 영향력이 가장 큰 미국과 중국이 대북 추가 압박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상황에서 자칫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부상할 기미마저 보인다.
G20정상회의를 계기로 6일(현지시간) 한미일 정상만찬이 열리고,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시급히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또 한미일 정상들은 이번 G20을 계기로 개최되는 양자회담 및 다자회의를 최대한 활용해 중국, 러시아와 긴밀히 소통해 나간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하지만 안보리 등 국제사회의 기류를 볼 때 이미 미중간 대북정책 관련 밀월기가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 본토 소재 은행 제재와 대만으로의 무기판매 승인 등 단계적으로 강화된 조치들을 내놓고 있지만, 중국은 대북 압박이 강화될수록 점차 북한에 대해 전략적 완충지대로 보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벌써부터 문 대통령이 6일 내놓은 이른바 베를린 구상이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베를린 구상의 핵심으로 “한반도에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당장 미국과 중국을 논의 테이블에 마주앉게 해야 하지만 북한의 도발이 반복되고, 중국이 대북제재 강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이 오히려 대화에 동참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흐름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밝힌 남북관계를 주도하기 위한 첫 실행 방안을 이번 베를린에서 제시했다. 10.4선언 10주년 및 추석을 계기로 하는 이산가족상봉 행사, 내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의 참가, 당장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적대행위 중단 등을 제안하면서 “평화협정을 비롯해 남북협력을 위해 언제라도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며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열어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ICBM 시험발사를 감행한 북한은 더욱 종잡을 수 없게 됐고, 이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하게 얽혀드는 양상이다. 따라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베를린 선언은 긴 호흡으로 추진하되 당장 북한의 도발과 국제사회의 공조는 현실감 있게 구사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역대 정부마다 경제정책뿐 아니라 첫단추가 잘못 꿰어진 대북정책이 성패를 좌우해왔기 때문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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