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병화 기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100일이 됐다. 17일 주택시장에서 본 문재인 정부 100일은 '투기와의 전쟁'이라고 요약해도 지나침이 없다는게 대다수 전문가나 시장 관계자들의 평가다.
'6‧19대책’을 시작으로 ‘8‧2대책’으로 이어진 두 차례의 '규제 폭탄'에 집값이 안정세로 돌아서면서 소기의 효과를 거두는데는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서민과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꿈은 더욱 멀어졌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 집값 상승세 멈추고 청약시장도 썰렁
5월 10일 출범한 문제인 정부는 한 달 만에 6‧19대책을 내놨다. 서울과 경기도 광명 등 전국 40개 시군구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해 담보 대출 규모를 줄이고 전매 제한 기간을 늘리는 것이 골자였다.
정부는 시장 과열의 진원지를 선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핀셋 규제’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잠시 주춤하던 아파트 가격은 다시 치솟기 시작했고 거래량도 상승했다. 지난 7월 28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일주일 새 0.57% 상승하며 올 들어 가장 높은 주간 상승률을 기록했고, 7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만4564건으로 2006년 실거래가 신고제 도입 이후 최대치를 보였다.
6‧19대책이 불과 40여일 만에 시장에서 실패로 결론나자 정부는 부랴부랴 8‧2대책을 발표했다.
서울 25개구 전지역 투기과열지구, 강남4구 등 11곳 투기지역,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 청약1순위 자격 요건 강화 등 넣을 것은 다 넣었다는 ‘부동산 규제 종합선물세트’였다.
초강력 규제의 단기적인 영향은 즉시 나타났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서울 주간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0.03%로, 지난해 2월 마지막주(-0.01%) 이후 1년 반 만에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서초(-0.22%), 강동(-0.20%), 송파(-0.05%), 강남(-0.02%) 등 강남 4구를 비롯해 양천(-0.03%), 노원(-0.01%) 등의 아파트 가격이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청약시장 분위기도 달라졌다. 대책 이후 서울 첫 분양인 ‘공덕 SK리더스뷰’ 견본주택에는 개관 이후 주말 사흘간 1만5000여명이 방문하는 데 그쳤다.
분양 업계 관계자들은 대책 발표 전 서울 분양 아파트의 견본주택 개관 첫 주 방문객이 3만명을 웃돌던 것을 감안하면 급격히 감소했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분양권 불법 전매를 주선하는 이른 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도 사라졌다”며 “8‧2대책 이후 2~3개월 정도 단기적으로 집값은 안정세를 보일 것 같지만 중장기적으로 지속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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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정부 출범 100일 기자회견에서 “더 강력한 (부동산) 대책도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
△'투기와의 전쟁'에 초점…서민·실수요 정책은 아쉬워
두 차례 나온 부동산 대책은 다주택자 등 투기를 막고 실수요 중심의 시장 질서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서민이나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내 집 장만이 더 어려워졌다는 불만이다.
8‧2대책으로 서울 전역에서 LTV와 DTI는 각각 40%로 강화됐다. 서민·실수요자에게는 10%포인트 완화한 50%를 적용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지만 ‘무주택자, 6억원 이하 주택, 부부 합산 연소득 6000만원(생애 최초 주택구매자 7000만원)’이라는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지난 13일 서민의 기준을 기존 부부 합산 연소득 7000만원(생애 최초 주택구매자 8000만원)으로 1000만원 상향했지만 서민‧실수요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7월 말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6억2888만원 수준이다. LTV와 DTI 50%를 적용해도 3억원은 확보하고 있어야 서울에서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모(37)씨는 “서민들에게 인심쓰듯 50%를 적용해 준다고 하는데 사실 50%도 8‧2대책 이전과 비교하면 10%포인트 낮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관악구 신도림동 다세대주택에 4년째 거주 중인 임산부 김모씨(31)는 “남편 직장이 있는 서울에서 6억원 이하 아파트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며 “출산 후 아이 건강을 생각해 깨끗한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고 했던 것인데 서울을 벗어나거나 10~20년 이상된 낡은 아파트로 이사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출이 막혀 서민들의 부담이 커진 반면, 여유 자금이 넉넉한 부자들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개포동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서민·실수요자들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대출 걱정없는 부자들은 급매나 미분양 알짜 물량을 주목하고 있다"며 "최근 압구정 아파트 등에 대한 문의가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귀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가진 기자회견에서 “더 강력한 (부동산) 대책도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시장이 다시 과열될 경우 언제든지 고강도 추가 대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대목이다.
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는 “문재인 정부가 선포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정부의 바람대로 장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규제 강화보다 서민‧실수요자를 위한 추가 보완책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펜=김병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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