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 밀수' 겨냥…무역회사 27곳·선박 28척·개인 1명 등 56개 제재 대상
[미디어펜=김규태 기자]미국 재무부가 23일(현지시간) 선박과 운송회사 등 56개 대상에 대해 역대 최대 규모의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한 가운데,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 후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북압박이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초 밀무역을 전면 차단하는 포괄적 해상차단 조치가 유력했으나, 미 재무부는 이보다 덜하면서도 무역회사 27곳·선박 28척·개인 1명 등 제재 대상이 56개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제재를 단행해 북한 해상무역을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공해상에서 이뤄지는 선박 간 물품 환적의 경우 선박 등록지·선박을 용선해 운용하는 곳·발주처라는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유엔 안보리가 지난해 12월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2397호)으로도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북한의 해상 밀수를 막지 못한다는 평가가 있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날 특별지정제재대상(SDN) 명단을 발표하면서 북한의 주요 전략수출품인 석탄 수출을 도왔던 국제 해운회사 9곳과 선박 9척을 명단에 올렸다.

현재 한국 정부가 억류한 파나마 선적의 코티 호를 비롯해 중국·코모로·탄자니아 선적으로 확인된 이들은 석탄 수출을 포함해 유엔이 금지한 공해상 선박간 환적을 통해 정제 석유제품 거래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외에도 재무부는 싱가포르·대만·홍콩·마샬제도 선적의 선박 및 해운회사도 제재대상에 올렸고, 북한 해운회사 16곳과 북한 선적 선박 19척을 포함시켰다.

개인 제재대상 1명은 대만국적 기업인 '장영원(張永源)'으로, 그는 북한 브로커를 통해 북한 석탄 수출을 조정하면서 불법 석유 거래를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티브 므누신 재무부 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재무부는 전세계에서 북한 이익을 위해 일하는 선박·해운사·기관을 차단하고 북한이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이용하는 모든 불법적 수단들을 공격적으로 겨냥할 것"이라며 "이번 제재는 북한 김정은 정권을 더 고립시키고자 대북 해상무역회사와 선박을 제재하는 데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해상봉쇄'에 가까운 조치인 이번 제재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공화당 최대 후원단체인 보수정치행동위원회(CPAC) 연설에서 "전례 없는 가장 무거운 제재"로 표현하기도 했다.

재무부 제재대상에 오른 이들은 미국기업 및 개인과 거래를 할 수 없고 미국 주도 금융망에도 접근할 수 없게 된다.

   
▲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선박과 운송회사 등 56개 대상을 타깃으로 한 역대 최대 규모의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사진은 제재대상인 북한 화물선 금운산호(좌측)가 지난해 12월9일 공해상에서 파나마선적 코티호와 붙어 유류를 환적하는 모습. 미 재무부가 이날 대북제재를 발표하면서 공개했다./사진=미국 재무부 홈페이지(PRESS RELEASES) 제공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딸이자 최측근인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의 방한일에 맞춰나온 대북압박 조치로, 평화공세 등 북한의 대남 유화 전략에도 중단없이 '최대의 압박'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와 초강력 경고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북한 핵프로그램에 자금을 대고 군을 유지하는 정권의 자금 및 연료원을 추가로 차단하는 새로운 조치"라고 언급했고, 미 정부 고위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지속된 핵 개발에 명백히 불만을 갖고 있고 북한 전술이 진화하면 미국의 대응역량도 강화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북 압박은 이번 제재 조치로도 끝나지 않을 모양새다.

므누신 장관은 이날 이번 조치에 대해 "계속 이어지는 '최대의 압박' 캠페인의 일부"라며 "이 캠페인은 미국이 금지한 무역을 통해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자금을 대는 재원을 끊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고, OFAC는 북한의 선박간 환적 행태를 구체적인 사례로 설명하면서 해상거래에 연루된 개인과 기관 모두 제재될 수 있다는 '국제운송주의보'도 발표했다.

특히 미 정부 고위관리는 "미국 글로벌 해운 자문위원회가 밀수 선박의 위성사진을 제공하는 등 선박 감시경보 체제를 갖추고 한일 등 동맹국과 협력해 나포 압류 등 해상차단을 집행할 것"이라며 "유엔 제재를 위반해 북한과 불법 거래하고 이를 묵인한 제3국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도 단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앞서 평창올림픽 직전인 지난달 24일 북한과 중국의 기관 9곳, 개인 16명, 선박 6척을 제재한 후 한달만에 독자제재를 냈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로 10번째며 올해 두 번째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이 대화 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이지만 미국이 거듭 사전 예고했다가 나온 역대 최대 규모의 추가제재가 어떤 파급효과를 낼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가장 무거운 제재를 가했지만 솔직히 어떠한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 두고 보자"고 말했고, 유엔주재 미국대표부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 북한의 불법 해상 밀수를 끝내기 위한 '제재지정 제안서'를 제출했다.

우리 외교부는 24일 오전 미국의 대북 독자제재 추가 지정에 대해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한미 양국은 긴밀한 대북공조와 협의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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