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이성민은 지금껏 급한 소리를 낸 적이 없다. 오랜 시간 극단에서 내공을 쌓은 그는 2001년 단편 '블랙&화이트'에서 얼굴을 비친 뒤 '골든타임'(2012년), '미생'(2014년)에서야 비로소 빛을 봤다.
단역부터 주·조연 등 크고 작은 모든 롤을 소화한 그는 "배우는 미련하게 지치지 말고 소같이 묵묵하게 칼 열심히 갈고 '기회여 언제든 나에게 와라, 단칼에 보여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마음이 조급해지거나 지치면 안 된다"(2012년 SBS '힐링캠프' 中)고 말하기도 했다.
극단 생활까지 더하면 연기인생 무려 22년. 자신이 맡은 바를 톡톡히 해내며 굵직한 작품의 주연을 꿰차고 있는 이성민이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 '바람 바람 바람'으로 돌아왔다.
영화 '바람 바람 바람'(감독 이병헌)은 20년 경력을 자랑하는 바람의 전설 석근(이성민)과 뒤늦게 바람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봉수(신하균), 그리고 SNS와 사랑에 빠진 봉수의 아내 미영(송지효) 앞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제니(이엘)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최근 '바람 바람 바람'(감독 이병헌)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민은 "영화가 귀엽다"고 했다. 불륜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우려도 있었지만, 이병헌 감독 특유의 유머가 경쾌하고 담백하게 표현돼 만족스럽다고. 그는 "영화를 본 아내가 조금 더 세게 했어야 하지 않냐고 하더라"라며 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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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람바람바람'의 배우 이성민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NEW 제공 |
▲ 불륜을 소재로 한 작품이지만 극적으로 표현됐기 때문에 오히려 논란에 대한 우려가 걷힌 것 같다.
"전 사회적인 문제, 어두운 측면들을 끄집어내서 웃음으로 털어내는 게 코미디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정치적인 이슈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이 영화도 충분히 그렇게 이해하고 보면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는 코미디물이죠. 그게 너무 리얼하거나 막장처럼 치달았다면 코미디임에도 부담스럽고 난해해질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을 감독님이 담백하게 잘 완성해주셨어요. '바람 바람 바람'은 장점을 잘 살려낸 블랙코미디에요."
▲ 제주도 로케이션 촬영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았는데 불편한 점은 없었나.
"우리 가족은 제가 집에 있는 걸 불편해하기 때문에.(웃음) 다음 작품이 '목격자'라는 영화인데, 집사람이 그건 어디서 찍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서울·경기에서 찍는다니까 '부산 안 가?' 이래요. 이미 경지가… 2~3개월 정도의 촬영이 끝나면 보통 집에 있는데, 제가 집에서 잘 안 나가거든요. 제가 있으면 와이프의 생활이 제게 맞춰지고, 제가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편이 아니라서 귀찮아하더라고요."
▲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바람둥이 역을 능청스럽게 소화했다. 캐스팅을 제안한 이병헌 감독의 눈도 남다른 것 같은데.
"이병헌 감독님이 절 캐스팅한 이유는 석근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극복해나가는 부분 때문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바람둥이 역할이니 구레나룻, 수염도 기르고 외모에 차별화를 두려고 했는데, 그랬다면 캐릭터는 강렬했겠지만 후반부 촬영이 어려웠을 것 같아요."
▲ 자신과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한 소감은.
"저한테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캐릭터가 더 매력 있었던 것 같아요. 전 뽐내거나 누구에게 먼저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런 모습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매력으로 다가왔죠. 또 어떤 문제나 트러블을 현명하게 처리하는 모습도 매력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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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람바람바람'의 배우 이성민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NEW 제공 |
▲ 영화의 맛이 고스란히 드러난 '롤러코스터 신'은 어떻게 봤나.
"롤러코스터가 곧 석근의 인생이지 않을까 싶어요. 롤러코스터를 디자인하는 사람이고, 거기서 삶의 의미를 가지는 사람이기도 하고. 롤러코스터는 굴곡진 인생, 위태하면서도 짜릿한 그의 삶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그걸 덤덤하게 타는 얼굴은 모든 시련을 극복한 뒤 겸손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 '이병헌표 코미디'는 어땠나.
"이병헌 감독님의 대사는 허를 찌르는 부분이 있어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럴 거라고 예측하는 순간 뒤통수를 치죠. 리얼리티와는 조금 다른 지점이니 처음에는 낯설고 당황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걸 즐기게 되더라고요. 이병헌 감독님은 똑똑한 감독인 게, 한 컷만을 보는 게 아니라 컷과 컷을 어떤 호흡으로 붙일지 생각해요. 저희의 연기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고, 모든 장면을 계산하는 것 같더라고요. 영화 보고 나서는 '역시' 싶었죠."
▲ 봉수 역을 맡은 신하균과는 친해졌나. 이성민·신하균 모두 과묵하기로 유명한데.
"하균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말을 먼저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친해지는 데는 오래 걸리죠. 근데 이번에는 제주도에 갇혀 있으니까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배우라고 해봐야 꼴랑 4명, 없을 땐 2명 이러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지더라고요."
▲ 친하게 지내는 동료배우는 누군가.
"저는 '보안관' 멤버들을 자주 만나요. (배)정남이랑 김종수 형. '보안관' 팀은 지금도 연락하고, 영화 개봉할 때 서로 같이 가주고. (조)진웅이는 바빠서 자주 못 만나고. 만나면요? 술 자주 마시죠.(웃음) 전 술을 안 마시니까 커피 마시면서 술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배우들이) 너무 익숙해져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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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람바람바람'의 배우 이성민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NEW 제공 |
▲ 첫 주연작 '로봇, 소리' 이후 작품의 주연을 도맡고 있다. 부담감이 클 것 같은데.
"'로봇, 소리' 땐 참 힘들었어요. 제게 누군가가 돈을 투자해서 한 일이었는데. 좋은 결과를 못 냈고. 로봇과 둘이 다니면서 많이 외로웠고… 그래서 다음에 영화를 하면 꼭 배우들과 같이 다니는 작품을 해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보안관' 때는 다 같이 다녔어요. 기분이 너무 좋고 의지가 되더라고요. 이젠 영화를 책임져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 신중해져요. 이게 가능한 것인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죠."
▲ 이성민이라는 배우는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필모그래피 상 겹치는 캐릭터를 찾아보기가 힘든데.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한데, 그게 다 작가의 몫이고 감독의 몫인 것 같아요. 주니까 하는 거고, 대본에 있는 걸 하는 것뿐이거든요. 전 역할의 크고 작음을 신경 쓰지 않고 순리대로 하려고 해요. 배우는 필연적으로 내 살을 잘라주는 직업인데, 어느 날 내가 잘라줄 살이 없으면 바닥이 나는 거죠. 그래서 후배들에게 한 부위는 아껴놓으라고 얘기해요. '이쪽이 지루하다 싶을 때 이쪽을 내줘라' 하고."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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