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유례 없는 정부의 요금제 설정
경쟁활성화 등 부작용 없는 해법 찾아야
   
▲ 김영민 디지털생활부장
[미디어펜=김영민 기자]"두루 널리 미침" '보편'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다. 경제·사회적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이 널리 이용한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이용자 측면에서 보편이라는 단어는 참 좋은 말이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거나 널리 퍼져 있어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보편'이라는 말을 두고 정부와 통신사들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 중 하나인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 정부가 통신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보편요금제'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 보편요금제는 월 3만원대 요금제에서 제공하고 있는 데이터 1기가바이트(GB)와 음성통화 200분 혜택을 2만원대 요금제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가계통신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지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기본료 인하와 가입비 폐지 등과 비교하면 보편요금제는 '체감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동통신사들은 보편요금제 요금제가 도입되면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이 1만원 이상 줄어드는 것은 물론, 상위 요금제까지 연쇄적으로 인하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영업이익이 반토막 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 선택약정할인율을 20%에서 25%로 상향해 수익이 줄고 있는데 보편요금제까지 도입되면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우리나라에 이동통신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전 세계적으로 정부가 요금을 설계, 통제하는 것은 유례 없는 일이다. 이처럼 '보편'적이지 않은 규제로 기업 경영의 자유까지 빼앗으면서 보편요금제를 도입하려는 정부의 의도는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통신비 절감 대책으로 보편요금제와 함께 거론되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이 있다. 바로 단말기 완전자급제인데, 자급제를 확대하겠다는 계획만 남기고 묻혀 버렸다. 정부가 단말기 완전자급제 대신 보편요금제를 택한 이유는 공룡 통신사들을 통제할 채찍을 계속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규제개혁위원회가 지난달 27일 보편요금제 도입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심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보편요금제는 통신사들의 자연스러운 경쟁을 통한 통신비 인하와는 거리가 멀다. 그동안 정부는 경쟁 활성화를 가계통신비 절감 정책으로 빠짐 없이 제시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요금제 자체에 개입해 직접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지나친 경영 간섭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보편요금제 도입은 경쟁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알뜰폰 사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이통사보다 싼 요금으로 승부를 걸고 있는 알뜰폰 사업자에게 보편요금제는 핵폭탄 같은 위협적인 존재다. 알뜰폰은 현재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의 12% 수준이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도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울러 이통사들이 내년 3월 상용화를 목표로 5세대(5G) 이동통신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보편요금제 등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이 거세지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무리한 요금 인하 추진은 세계 최초 상용화를 통해 5G 시장 선도하겠다는 정부와 이통사들의 희망을 물거품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5G 주파수 경매도 낙찰가가 5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이통사들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통사들의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결국 자연스러운 경쟁을 통하지 않고 정부의 무리한 개입으로 요금까지 결정되는 환경 하에서는 기업의 발전과 서비스 품질 향상 등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단순히 월 1만원 정도 덜 내고 데이터와 음성통화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기업 간 경쟁 활성화로 요금이 싸지고 서비스와 품질이 좋아지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정부가 보편적이지 않은 통신비 절감 정책인 보편요금제를 강행할 경우 당장 높은 체감 효과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지 모르지만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디어펜=김영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