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증거능력 인정 위해 '하드원본 제출' 요구…압수수색 영장 청구에 법원 '발부 여부' 주목
[미디어펜=김규태 기자]검찰이 재판거래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에 들어갔지만, 대법원이 검찰의 임의제출 요청 자료 중 일부만 전달하고 법원행정처가 관계자들의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자기장을 이용한 저장데이터 삭제기술) 처리해 증거인멸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법원은 이를 전산장비 운영관리지침에 따른 정상절차라 해명했지만, 법조계는 검찰이 행정처의 이러한 디가우징을 공개한 것을 두고 '증거인멸 우려'를 강조해 강제수사 명분쌓기에 나섰다고 보았다.
검찰은 이에 대해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할 당시, 해당 의혹과 관련해 2차조사가 착수된 상황이었다"며 디가우징된 경위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고, 대법원은 "대법관 이상이 사용한 컴퓨터는 직무 특성상 임의로 재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해 '전산장비운영관리지침 27조(사용불능전산장비)'의 사용할 수 없는 장비로서 31조(불용품 매각 처분시 유의사항)에 따라 디가우징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대법원에게 일단 법원행정처의 해당 하드디스크 원본에 대한 제출을 거듭 요구한 상태다. 법원이 원본파일일지라도 일부 자료만을 추출해 전해준 경우,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힘들다는 판례 때문이다.
법조계는 검찰의 하드디스크 원본 제출 요구를 대법원이 재차 거부하고 제출하지 않을 경우, 대법원에 대한 사상 초유의 압수수색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았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이에 대해 "디가우징으로 이미 복구불가라 하더라도 검찰 입장에서는 결국 법원행정처 하드디스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다만 영장심사를 전담하는 판사가 발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혐의와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 변수"라고 밝혔다.
그는 "혐의와 증거가 분명하지 않아 기각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될 경우 법원행정처에 대한 영장 청구를 법원 스스로 기각했다는 점에서 '셀프 재판'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당초 양승태 사법부 당시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검찰의 입장은 대법원이 이번에 제출한 410건의 원본파일은 관계자 파일 전체의 0.1%에 불과해 전체 자료에 대한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하드디스크 원본을 비롯해 관계자 법관들의 법인카드 및 관용차 내역까지 제출하라고 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에 대해 법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검찰이 애초에 임의제출이라는 무리수를 두었다"며 "파일 작성자들의 동의 없이 범죄 혐의가 없는 자료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검찰에게 넘기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대법원 또한 이에 대해 "해당 하드디스크에는 의혹과 무관하거나 공무상 비밀이 담겨있는 파일이 들어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26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은 대법원이 자체조사 과정에서 검토한 410건에 대한 원본파일 등 A4 4박스 분량의 자료를 받았다.
의혹 규명을 위해 추가자료가 필수적이라는 게 검찰 판단이지만, 법조계는 당분간 검찰이 대법원을 상대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나서지 않고 대법원이 1차로 제출한 자료 분석과 함께 추가 확보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관측했다.
대법원은 이번 하드디스크 원본 제출 거부와 관련해 "하드디스크 임의 제출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밝혔고, 검찰 관계자는 강제수사 여부를 묻자 "무엇을 배제하고 무엇을 한다고 말한 바 없다"며 말을 아꼈다.
향후 압수수색 영장 청구에 따른 셀프재판 논란이 일 경우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대법원 1차자료에 대한 분석을 마친 후 강제수사 착수 및 소환조사 등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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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은 대법원이 자체조사 과정에서 검토한 410건에 대한 원본파일 등 A4 4박스 분량의 자료를 받았다./자료사진=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