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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5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오는 20~26일 금강산에서 열린다. 사진은 이번에 헤어질 때 3살이던 따님을 만나게 된 황우석(89) 할아버지의 의뢰서./통일부 공동취재단 |
[공동취재단=미디어펜 김소정 기자]“내가 나올 때 3살 짜리가 71살이 됐어요. 딸에게 많이 미안하죠. 아버지는 60세에 일찍 돌아가셨더라고요. 어머니는 장수하시다가 77세에 돌아가셨고, 걔 생모는 51세에 사망했더라고요. 그 어려운 일을 전부 다 걔가 겪었을 것 아니야.”-황우석(89) 할아버지-
“부모님이 언제 돌아가셨나 물어봐야죠. 제삿날이 언제인지 전혀 모르니까. 그게 제일 궁금하죠.”-박기동(82) 할아버지-
“전쟁 중에 북한이 병력을 만들기 위해 젊은 사람들을 데려갔어요. 어머니가 형님을 시골에 데려다놓으면 안전하다고 해서 광진교 쪽으로 가다가 잡힌 거예요. 집앞에서 놀고 있는데 엄마가 혼자 오시더라고요...”-이수남(77) 할아버지-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여해 부녀상봉을 하게 된 황우석 할아버지는 기자와 만나 “6.25전쟁 때 국군이 1.4 후퇴했다가 다시 올라갈 때 인민군에 끌려가기 싫어서 3개월만 피난할 작정으로 집을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부녀 상봉이라는 게 참 소설 같다. 한국에서나 있을 일이지 딴 나라에서는 그럴 일이 없잖아요”라고 소회를 밝혔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나’라는 질문에 황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살아줘서 감사하다고 얘기 해야죠. 그나마 걔까지 죽었으면 이번에 상봉도 안되고 내 혈육을 찾을 길이 없잖아요”라며 “걔가 유일하게 살아서 상봉을 하게 된거죠. 그러니까 고맙죠. 진짜 고마워요”라고 했다.
대한적십자에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한 지 30년이 넘었다는 그는 처음 신청할 당시만 해도 딸이 40대였을 거라고 회상했다. “제가 10년 전에만 됐어도 여동생들도 다 만날 수 있었어요. 2016년도에 세상 떠난 여동생도 있어요. 지금 걔가 살았으면 80세인데 2년 전에 세상 떠났더라고”라며 “빨리 통일이 돼서 왕래도 하고 서신 연락도 하고 전화도 할 수 있는 이런 세상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황 할아버지는 말했다.
6.25때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골로 피신하던 길에 잡혀갔던 형님들을 만나게 된 이수남 할아버지는 “처음 뜻밖의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며 “이런 벅찬 감정은 생전 처음이다. 말을 하면 눈물이 막 나와서 체면 때문에 말도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만나서 무슨 말씀 하실건지’를 묻자 그는 “살아계셔서 정말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죠. 형수님도 그렇고 조카도 그렇고. 살아 계시는 게 너무 영광이고 고맙다고. 부모님의 한을 우리가 다 누리는 거죠”라고 말했다.
박기동 할아버지는 자신이 중학생 때 당시 2세이던 남동생과 6세이던 여동생을 이번에 만나게 됐다. 전쟁 중에 부모님과 두 동생과 헤어져 남은 세 동생을 먹여살리느라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두고 1년 반동안 머슴살이를 했다고 한다. 이후 우연히 8240부대에 입대를 해서 동생들을 돌봤다.
박 할아버지는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처음했을 때 부모님을 만나면 “열심히 살았고 동생들 잘 보살폈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동생들을 만날 생각에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라고 했다.
그는 동생들에게 줄 선물로 겨울 잠바는 준비했다. “추운 데니까 입으라고. 나도 솔직하게 아직 15만원짜리 이상 잠바를 사 입어본 사실이 없어요. 근데 이건 여동생 아니 남동생 입으라고...”라며 눈에 그리움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