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보니 마음 놓여” 이산가족들, 객실서 도시락 만남까지 3시간 개별상봉
   
▲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리근숙(84) 할머니가 남측 가족들이 간직하고 있던 14살 때 만든 자수를 받고 들어 보이고 있다./뉴스통신취재단

[금강산 공동취재단=미디어펜 김소정 기자]“누이, 이거 기억하십니까. 누이가 14살 때 수놓고 간거...” 6.25전쟁 이전에 집을 떠나 원산 봉직공장에 돈을 벌러 갔다가 어머니와 생이별한 리근숙(84)씨를 찾은 이부동생 황보우영(69)씨가 자수가 놓인 작은 천 하나를 건넸다. 

어머니는 전쟁을 겪으면서 생사를 알길 없게 된 큰딸이 14살 때 만든 자수를 고이 간직해왔다. 평생 가슴에 딸을 묻고 살아온 어머니는 11년 전 92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 근숙이가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꼭 알아봐라. 근숙이를 만나면 이걸(근숙씨가 만든 자수) 꼭 전해줘라”라고 유언을 남겼다. 

우영씨는 24일 근숙씨를 처음 만나자마자 이 자수를 보여줬다. 세로 10여센티미터 가로 15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자수였다. 엄마가 큰딸 생각을 하면서 신에게 빌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보여줬다. 근숙씨는 흘러가버린 세월 만큼이나 빛이 바랜 자수에 얼굴을 묻었다.

이번에는 북측에서 신청한 가족들이 남측 가족들을 만나는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만남이 25일 금강산에서 이틀째를 맞았다. 

우영씨는 이날 개별상봉에서 근숙씨에게 자수를 선물했다. 어머니는 근숙씨 생일 때마다 장독대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했고, 딸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속초 집에서 이사를 한번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날 남북의 가족들은 오전10시쯤부터 2시간가량 금강산 호텔에서 오붓한 개별 상봉 시간을 가졌다. 이어 가족들은 상봉했던 객실에서 우리측 지원인력이 배달한 도시락을 1시간 동안 먹으면 담소를 이어갔다.

개별상봉은 남북 관계자나 취재진이 없는 가운데 가족끼리만 이뤄져서 더욱 오붓한 만남을 가질 수 있다. 특히 1시간 객실 도시락 오찬은 이번 21차 이산가족상봉에서 처음 도입됐다. 

객실로 향하던 박춘자(77)씨는 북측 언니를 만난 소감을 묻자 “잘 산다고 하니까 마음이 놓이고 편안하다”고 했다. 언니 봉렬(85)씨는 돈을 벌겠다고 제주에서 서울로 떠난 뒤 소식이 끊겼다. 춘자씨 남측 가족은 20여년 전부턴 봉렬씨의 제사도 지냈다. 죽은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춘자씨는 “어제 들어보니까 언니가 평양에서 산다더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심인자(76)씨는 그리워하던 북측 외삼촌을 만난 기쁨에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심씨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나 마음이 뭉클했다”면서도 “외삼촌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정정해서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북측 가족들은 당국이 준비한 선물 외에도 개인적으로 준비한 선물을 양손에 들고 밝은 표정으로 객실로 향했다. 개성고려인삼, 가족사진 액자 등을 준비한 북측 리숙희씨(90) 아들 영길씨(53)는 “(개별상봉을 하게 돼) 기쁘다. 한번이 아니고 북남이 모여사는 영원한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전날까지 태풍을 우려했던 이산가족들은 이날 맑게 개인 금강산 날씨에 안도했다. 이른 새벽 금강산 수정봉 언저리에 무지개가 보였고, 안개가 자욱하던 아침 날씨도 낮이 되며 환해졌다. 전날 출발 전 속초에서 비에 갇혀 로비에 머물던 모습과 대조적으로 오전6시부터 호텔 주변을 산책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개별상봉장인 금강산호텔 로비엔 84개의 쇼핑백이 놓여 있었다. 백두산 들쭉술, 평양주, 대평주 등 북측 당국이 준비한 남측가족 선물이다. 1차 상봉 때와 마찬가지로 백두산들쭉술, 평양주, 대평주로 구성됐다. 북측 가족들이 개별로 준비한 선물에는 천연꿀, 고려술, 고려인삼술, 개성고려인삼차 등이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