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이 5일 방북해 소기의 목적을 거두려면 미국과 북한 간 종전선언과 비핵화의 거래를 완성시켜야 한다.
실제로 특사단의 방북 전날인 4일 문 대통령은 이번 특사단을 통해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과 맞교환할 비핵화 시간표 제출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한 북한으로 하여금 핵 리스트 제출을 수용하게 해서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강한 북한 전담팀과 함께 핵 리스트 공동작성을 성사시키는 것이 최선의 안이 될 것이다.
비핵화 중재가 잘 될 경우 9월 중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의 방북이 재추진되면서 북미 간 실무협상이 재개되고, 10월 중 남북미 3자 혹은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으로 구성된 특사단은 5일 오전 공군2호기를 이용해 서울공항을 출발한다. 당일 일정으로 방북하게 된 특사단은 평양에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등과 면담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간 중재가 잘 될 경우 특사단은 평양에서 개최하는 9월 남북정상회담 일정은 물론 개성공단 내 설치하기로 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 일정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이유가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시각도 여전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이 취소된 이후 미국의 일부 언론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미북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분석을 연일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인터넷매체 복스(Vox)는 29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에 정상회담 직후 한국 전쟁을 끝내는 선언에 서명하겠다고 말했다”며 “정상회담 앞서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도 당시 종전선언 약속을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이 방북했지만 김정은 위원장도 만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온 일이나 지난달 28일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이 예정됐다가 취소된 배경에 종전선언이 있다는 것이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답보 상태에 머물렀던 이유가 종전선언 미이행이라는 데 방점이 찍히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가 또다시 필요해졌고 특사단의 역할도 선명해졌다.
지난 3월 첫 번째 대북특사단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의지를 확인한 뒤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것에 이어 이번에는 센토사선언에 담긴 ‘새로운 미북관계 발전’과 ‘완전한 비핵화’를 가시화시키는 중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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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5일 방북할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절단이 지난 3월 특사단 그대로 결정됐다. 사진은 지난 3월 1차 대북특사단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기념촬영한 모습.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 위원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가정보원 2차장./청와대 제공 |
관건은 북한이 바라는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 정치권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여전히 강하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에 앞서 비핵화 액션플랜을 요구해왔고 급기야 지난달 말이 만료될 계획이던 미국인 북한여행금지 조치를 내년 8월 말까지 연장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 취할 수밖에 없었던 조치로 보인다.
또 여전히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협상 진전을 위해서는 종전선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근본적인 안보 상황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선언은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북한의 비핵화 액션플랜이 안 나올 경우 미국 내 부정적인 기류는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는 최근 VOA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은 사실상 끝난지 이미 수십년이 됐다”면서 “종전선언은 관계정상화 등 더욱 복잡한 절차가 뒤따르는 평화협정과는 다르다. 미국과 한국은 아무 때든 어떤 것도 잃지 않으면서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종전선언을 채택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안보 상황 등 현실이 변하지 않는 이상 이는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며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왜 북한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겠나. 지금 벌어지는 종전과 평화협정 논의는 북한의 제재 압박 완화를 위한 노력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미국의 중간선거 이전에 트럼프 대통령에게나 김정은 위원장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기회라는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에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경기대학교 부총장)는 “종전선언과 관련해 북한은 실질적 비핵화 협상에 있어서 출발점이라고 생각하고 일종의 MOU체결로 여기는 반면 미국은 비핵화 협상의 종착점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며 “문 대통령이 북미간 이런 정서 차이를 해소시키고 다른 양측의 견해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설득하는 중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브리핑에서 실제로 종전선언을 언급한 사실이 있는데다, 센토사합의문 1항에 명시한 북미관계 재설정 부분에 대해서도 북한은 이 조항에 종전선언이 포함됐다고 여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센토사합의대로 북한은 핵실험장 및 미사일발사장을 폐기했으며, 미국은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 비핵화 의지를 의심한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이행하지 않는 바람에 김 위원장도 더 이상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않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편, 북한은 대북특사단 방북을 하루 앞둔 4일 노동신문을 통해 미국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과 남북철도연결 등 판문점선언에 명시된 주요 남북협력사업들을 방해하고 있고, 예정된 남북정상회담까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있다며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남북관계 진전 속도는 우리 민족이 정한 시간표에 달려있다며,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는 북한도 북미관계나 남북관계의 파국을 원하지 않으면서 대북특사단이 중재역할로 준비한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종전선언이 동시에 실현되기를 바라는 간접적인 의사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