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 완화로 초점 옮겨 비핵화 촉진 시도했으나 'CVID 조건' 재확인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프랑스 국빈방문으로 시작해 21일 덴마크 공식방문까지 끝내고 귀국길에 올라 7박9일의 유럽순방을 모두 마무리했다. 

이번 문 대통령의 유럽 순방의 최대 성과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 초청 메시지’를 전달한 결과 교황의 방북 수락을 얻어낸 것이다. 세계 12억명 가톨릭 세계의 영적 지도자이자 평화와 화해의 상징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교황의 답변은 당초 청와대 측도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메시지로 평가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전날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과의 만찬 회동에서도 교황청 인사들은 교황이 문 대통령 알현에서 어떤 말씀을 하실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교황의 메시지는 우리가 기대하고 바랐던 그대로라고 생각한다”고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여기에 교황은 “한반도에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시라. 두려워하지 마시라”며 문 대통령을 지지했다. 

앞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바티칸 '특사 파견‘ 등 프란치스코 교황을 공식 초청하는 과정이나 실제로 교황이 북한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만나고, 평양에서 특별미사를 드리고, 북한에서 교황의 연설이 진행된다면 그 모든 과정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북한의 변화를 촉진시킬 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과정이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 과정과 맞물리면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효과에도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만약 북한이 바티칸과 수교까지 맺는다면 북한의 정상국가화와 인권문제 개선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아셈(ASEM)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청와대


반면, 문 대통령이 유럽 순방 내내 북한의 비핵화 과정을 설명하고 ‘북한의 돌이킬 수 없는 실질적 비핵화에 따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도 완화되어야 한다’고 요청한 것은 완곡한 거절을 받았다.

먼저 문 대통령은 대북제재의 열쇠를 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만나 설득 작업을 벌였다. 문 대통령은 이들에게 북한 비핵화에 따른 제재 완화 등 상응조치가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문 대통령은 유럽 주요국가인 독일과 유럽연합 수장과도 만나 같은 논리를 폈다. 프랑스와 영국은 문 대통령의 취지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북한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를 위한 좀 더 확실한 행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대북제재 완화를 얘기하면서 ‘북한의 돌이킬 수 없는 실질적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웠지만 유럽 정상들은 즉각적인 동의를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정부도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고, 미국도 지난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사용하지 않아온 CVID를 촉구해 완고함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을 만난 유럽 정상들이 CVID를 촉구한 것을 놓고 이미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결의에서 CVID를 천명했고, 유엔 회원국 28개가 속한 유럽연합(EU)도 그런 원칙을 따르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특히 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아직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충분치 않다는 EU의 입장이 재확인된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일단 유럽의 주요국가 정상들에게 변화된 한반도 정세를 충분히 설명했고, 북한의 비핵화 이후에 대비한 제재 완화 여부를 공론화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유럽 국가들과는 우리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관해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라들이 아니어서, 각 정상들이 최근의 상황 변화에 관해 매우 궁금해하면서 질문했다”며 “이들 정상에게 한반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설명했고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이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문 대통령은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진전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들에게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면서 대북제제 완화를 공론화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에 맞춰져 있던 초점을 ‘제제완화’로 옮겨서 북한의 비핵화도 촉진하고 국제사회도 고민할 수 있도록 화두를 던진 셈이다. 청와대 측도 “미국이 협상 전략상 제재완화를 먼저 밝힐 수 없으므로 유엔 등 국제여론이 움직일 경우 북‧미 모두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제시한 제재완화의 조건은 ‘북한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비핵화 진척’이고, 이는 지난달 평양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이 약속한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의 영구 폐기와 유관국의 참관, 그리고 폐기 의사를 보인 영변 시설 폐쇄 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핵 리스트 제출 등 추가 조치를 요구하고 있어 온도차가 있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은 문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에 각국 정상들과 만나 대북 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에 대한 미국의소리 방송이 논평을 요청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 완화가 비핵화 이후에 이뤄져야 한다는 뚜렷한 입장을 갖고 있다”며 "미국은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원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