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일본기업들이 기산점 두고 다툴 것"…대법원 관계자 "소송 제기되면 일선 법원에서 새롭게 판단"
[미디어펜=김규태 기자]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3년 8개월 만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개인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면서 유족들의 줄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 일본 기업들의 배상까지는 소멸시효라는 장애물이 남아있다.

대법원이 지난달 30일 "1965년 당시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일본측 청구권 자금에 강제징용 피해배상금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각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권리가 확보됐지만, 소멸시효에 대해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앞서 소송을 제기한 14건의 재판 당사자 외에 다른 피해자들은 손해배상 청구 권리가 있는지 여부부터 다퉈야 하게 됐다.

시효가 지나면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가 사라지기 때문에 기산점(배상 청구권 소송 가능시점)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20만명에 달하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여부가 좌우된다.

기산점을 이번 판결 2018년 10월로 볼지, 2012년 5월 당시 대법원의 파기환송심 날짜로 볼지에 따라 각각 2021년 10월 및 2015년 5월이 소멸시효가 된다.

미쓰비시중공업·히타치조센·후지코시 등 일본기업 87곳 상대로 소송 14건을 진행하고 있는 피해자 및 유족 962명을 포함해서 행정안전부가 파악한 강제징용 피해자는 21만6992명이고, 국무총리실 산하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가 실태조사에서 확인된 피해자는 14만8961명(생존자 5000여명)이다.

관건은 이들 수만명이 새로 제기할 민사소송에서 일본기업들이 기산점을 놓고 다투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1일 이에 대해 "강제징용 소송이 제기되면 일선 법원에서 소멸시효를 새롭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담당 재판부가 소송별로 소멸시효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며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판결문 등 해당 판례를 면밀히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 시점을 언제로 볼지 대법원에서 판단하지 않아 소송내지 않았던 피해자의 구제 여부가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라며 "추가 소송 과정에서 결국 대법원이 재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그는 "양승태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는 피해자 승소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했던 대법원의 상고심 선고일인 2012년 5월24일을 다른 피해자들의 권리 인지 시점으로 판단했다"며 "이를 기준으로 하면 소멸시효는 2015년 5월"이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법조계 인사는 이에 대해 "지난 2016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2년 5월24일 상고심 선고는 여전히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고 일본기업이 재상고해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피해자가 배상 청구권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며 "이에 따르면 시효는 2021년 10월이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소멸시효 기산점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최종 선고 확정일인 지난달 30일로 보는게 타당하다"며 "향후 하급심 법원에서도 이 견해가 설득력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법원은 이번 소송 재상고심에서 "옛 신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피고(일본기업 신일철주금)에 대해서도 행사할 수 있고, 피고측이 주장하는 민법상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재해석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열게된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향후 새로이 제기될 민사소송에서 소멸시효를 비롯해 어떤 판단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0월30일 피해자 4명이 일본측 기업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대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