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은 24일 헌정 사상 최초로 (전현직 통틀어) 사법부 수장 출신 구속피의자로 전락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을 비롯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민사소송, 사법부 블랙리스트 및 법관 사찰,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불법수집,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사건 재판거래 등 각종 의혹에 연루되어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날인 23일 오전10시30분부터 오후4시까지 5시간 반 동안 열린 영장심사에서 재판 개입 및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영장심사 마지막 발언으로 "나는 모함을 받았다"며 "이렇게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 수치스럽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4일 오전1시58분경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명 부장판사는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면서 영장 발부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위계공무집행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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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이 헌정 사상 최초로 (전현직 통틀어) 사법부 수장 출신 구속피의자로 전락했다./사진=연합뉴스 |
법조계는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 피의자로 전락한 것에 대해 충격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법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전직 대통령 구속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건"이라며 "일부가 피해 받았다고 여기면 재판거래 의혹을 받게 되고, 주관적인 가치가 개입될 수 있는 물증임에도 그 증거력을 인정 받아 사실상 마녀재판하겠다는 것"이라며 우려했다.
그는 "재판정은 정의 구현하는 장소가 아니라 사실관계를 확인해 죄의 유무와 경중을 가리는 것"이라며 "전직 대법원장이 향후 어떻게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나. 법원이 스스로 최소한의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은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검찰 출신의 법조계 인사는 "이전 정권이 해왔으니까라는 관행에 메스를 들이댄 것"이라며 "직권남용으로 인신을 구속해 형사 처벌하겠다는 기준점을 완전히 바꾼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현직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 구속에 "법원 앞날을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것"이라며 "현실적으로는 정치권과 시민단체, 검찰이 사법부를 압박해 안정성을 송두리채 뒤흔드는 전례가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솔직히 말해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또 바뀐다면 지금 저 움직임에 앞장선 법관들도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 뻔하다"며 "사법부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다. 내부 갈등이 얼마나 더 커질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