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남북미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북한 비핵화 협상 카드의 변화 가능성이 관측되고 있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결과에서도 보듯이 당분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대북제재를 올릴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침 북한도 3차 북미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제재 해제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남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더했다.
문 대통령은 수보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남북미 3자 정상회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 동력을 살리기 위해 체제보장 방안이나 추가적인 한마군사훈련 축소 등을 협상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 지난해 6.12 1차 북미정상회담 이전 문 대통령은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개최해 종전선언에 합의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북미정상회담 직후 한미군사훈련 축소를 발표했고, 이후 북한은 대북제재 해제 카드를 끈질기게 주장해왔다.
1차와 달리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안이 도출되지 못하고 결렬된 데에는 하노이까지 이어진 북한의 대북제재 해제 요구를 미국이 거부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후 북한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고 밝혔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1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미국 식 협상법을 거부하면서도 제재 해제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고, 건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실무협상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갖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런 김 위원장의 발언에 따라 북한은 미국과 실무협상을 시작하면서 일단 제재 카드를 접을 가능성이 커졌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도 “북한의 상응조치 요구가 ‘제재’에서 ‘군사’ 분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기동 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으로서도 올해 말까지는 미국이 제재완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고, 협상 모멘텀을 살려나가려면 새로운 상응조치를 내세워야 한다”며 “종전선언이나 군사적 위협 해소, 체제안전보장과 관련한 상응조치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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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VTV |
지난 2월 말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제재 해제와 관련해 조급한 모습을 보였고, 이런 모습을 지켜본 미국은 대북제재가 작동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제재 유지에 더욱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러 워싱턴에서 한미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오찬을 겸해 총 116분간 진행됐던 정상회담 동안 트럼프 대통령을 독대한 것은 단 2분에 지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동은 상대방의 요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때 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13일(현지시간) 방송된 미국의소리 방송에서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과 단독 대면한 자리에서 어려운 말을 (한국 측에)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얘기”라며 “어떻게 보면 미국이 문 대통령을 보호한 것이다. 비공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지 않도록 배려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15일 공개발언에서 북한을 향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도 당장 대북특사 파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만약 정부가 대화채널을 통해 북한의 의사를 타진해봤다면 북한의 명시적인 언급이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16일 7박8일 일정으로 중앙아시아 3개국을 방문하기 위해 출국하면서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국내에 머물도록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순방 기간동안에는 순방 일정에만 집중하는 것이 맞는 만큼 이 기간 대북특사를 파견할 가능성도 낮다. 통일부도 이날 당장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고위급회담 추진 등에 나설 계획이 없다고 밝혀 4차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미국이 제재 해제를 제외한 북한의 체제보장이나 군사 분야의 조치를 약속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따라야 한다. 이와 관련해 이제는 최소한 큰 단계로 나눠서라도 비핵화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이 향후 과제로 지적한 북미 간 비핵화 개념 합의도 비핵화 로드맵 도출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안보전략연구실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전체 로드맵에 대한 합의와 신뢰 단계에서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쟁점이 만들어진다면 중재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정부의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 원칙을 설명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이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할 수 있다”고 했으니 앞으로 남북 간 또는 북미 간 로드맵을 만들기 위한 실무협상이 열릴지 여부도 주목된다.
아울러 최용환 실장은 향후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협상에서 이탈 가능성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이슈를 선택한 것은 지난 30년동안 워싱턴 주류들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성과를 내려고 한 것인 만큼 올해 말과 내년 초까지 성과가 안 난다면 내년 대선에 활용할 수도 없게 되므로 더 이상 협상을 끌고 갈 이유도 사라지는 것이 불안한 측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날(현지시간 15일)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김정은 위원장의 대화 용의가 있다는 발언을 언급하며 “나는 빨리 가고 싶지 않다. 빨리 갈 필요가 없다”며 “지금 완벽하게 움직이고 있고, 우리는 좋은 관계다. (대북) 제재는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미네소타주 번즈빌에서 열린 경제‧조세 개혁 라운드테이블회의에서 다시 한번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