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 미국과 일본이 각각 밀착하면서 문재인정부의 촉진자 역할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월 말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한과 거리를 유지한 채 지난 2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북러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김 위원장과 회담을 마친 푸틴 대통령이 잇따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면서 북중러 3각 연대가 복원되는 모양새다.
푸틴 대통령은 25일 김 위원장을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6자회담을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만남 이후에는 러시아 크렘린궁이 29일 “북한 문제는 러시아 역내 현안”이라는 말로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시진핑 주석은 베이징에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을 만나 최고 예우를 제공하며 양국간 밀착을 대외에 과시했다. 또 시 주석은 일대일로 포럼에서 일대일로에 서방의 자본이 들어와도 좋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중국의 시장을 대거 개방하는 등 대규모 유화책도 제시했다.
북한이 북중러 연대를 도모하면서 그동안 비핵화 협상에서 내세웠던 ‘제재 완화 및 해제’를 ‘체제 보장’으로 프레임이 전환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러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은 “북한도 비핵화를 원하고 있으며 체제보장도 원하고 있다”면서 “한미의 보장 매커니즘은 충분치 않다”고 밝혔다. 이는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이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취해나가는 데서 더욱 중요한 문제는 안전담보 문제”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모든 상황에 다 대비할 것”이라고 말해 ‘단계적‧동시적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북한은 일단 대북제재 카드를 내려놓고 미국의 군사 조치와 체제 보장을 먼저 요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중러 정상은 2017년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동시적 방법론에 따라 북한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동시 중단하고 이후 동북아 다자안보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비핵화 공동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미일 정상은 4, 5, 6월 매달 ‘월례 회담’을 할 예정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26일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대북제재를 위한 공동 결의까지 했다. 미일 정상은 골프 회동까지 10시간을 함께하며 우의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5월 나루히토 새 일왕 즉위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고, 다음달인 6월에는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다시 방일할 계획이다.
이렇게 ‘북중러 대 한일’ 구도가 그려지는 상황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북미 간 중재가 불가능해질 뿐 아니라 어쩔 수없이 대립 구도에 서야 하는 상황도 맞을 수 있다.
게다가 문재인정부 들어 악화일로를 걷는 한일관계도 부담으로 커졌다. 내달 초 서울에서 한미일 안보회의가 열릴 예정이지만 정부가 일본과 관계 복원을 위해 초계기 갈등에서 대승적인 태도를 취할지 지켜봐야 한다. 문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가질지도 주목된다.
북러 정상회담이 열리던 날 러시아의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안보서기가 청와대를 예방해 문 대통령을 접견하고 ‘중러 공동행동계획’을 설명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협상에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을 예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분석과 대응전략에 고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러 정상회담이 끝나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던 문 대통령은 일단 속도조절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7일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행사에서 영상메시지를 내고 “새로운 길이기에, 또 다함께 가야 하기에 때로는 천천히 오는 분들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북한의 여건이 되는대로 장소ㆍ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이 2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반응을 내놓고 있지 않은데다 최근 북한에서 남북채널 핵심축이었던 김영철 통전부장이 교체되면서 남측에 대한 불신 표명은 물론 북한 내부적으로 대남‧대미 전략을 새로 짜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거론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에 대해 미국이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이 노골화될수록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각국의 셈법이 작용하면서 복잡 다변화해질 것으로 보여 문 대통령의 다음 대응도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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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첫 북러정상회담을 갖고 있다./스푸트니크 통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