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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황복사 목탑터와 중문터 [사진=성림문화재연구원 제공] |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경주 황복사(皇福寺)가 '신라 첫 쌍탑식 사찰'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은 사적 제163호로 지정된 경주 낭산 일원에 있는 황복사 추정 터에서 한 변이 6m 길이인 정사각형 목탑터 2개를 발굴했다고 15일 밝혔다.
사찰 중심 건물인 금당(金堂)과 탑 2개, 중문이 남북 방향으로 배치된 사실이 드러났다.
사찰을 처음 조성한 시기는 중문터 적심(積心·주춧돌 위에 쌓는 돌무더기)과 단각고배(短脚高杯·짧은다리굽다리접시), 연꽃무늬 수막새를 근거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사이로 추정된다.
기존에는 신라 최초의 쌍탑식 사찰은 679년에 창건한 경주 사천왕사(四天王寺)로 알려졌다.
하지만 목탑터 규모가 작고 주변에 비를 세운 건물인 비각이 있으며 중문터와 가깝다는 점으로 미뤄, 종묘와 관련된 제단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 향후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황복사는 '삼국유사'에 654년 의상대사가 29세 나이로 출가했다고 기록된 절로, 의상대사가 허공을 밟고 올라가 탑돌이를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1942년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 해체 당시 나온 금동사리함 뚜껑에서 '죽은 왕의 신위를 모신 종묘의 신성한 영령을 위해 세운 선원가람'임을 뜻하는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이라는 글자가 나와, 왕실사찰로 추정되고 있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이하 연구원) 측은 "목탑은 띠 모양 기초 위에 원형 적심(積心·주춧돌 위에 쌓는 돌무더기)과 초석을 올린 형태"라며 "삼층석탑은 효소왕 1년인 692년에 세웠다는데, 그 전에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목탑터 앞에 있는 금당은 정면 7칸·측면 4칸 규모로, 길이가 28m와 16m이며, 중문은 정면 3칸·측면 2칸으로 증축 흔적이 있다.
또 십이지신상 건물터에서는 이전에 나온 토끼·뱀·말·양 조각상에 이어 소·쥐·돼지·개 조각상이 추가로 발견됐는데, 십이지신상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 노세 우시조(能勢丑三·1889∼1954)가 발굴, 흑백사진이 남아 있다.
출토된 유물은 금동입불상, 금동판불, 비석 조각, 장식기와인 치미, 녹색 유약을 바른 벽돌인 녹유전 등 700여 점이다.
황복사는 흥미로운 사실이 잇따라 알려져 학계에서 큰 관심을 끄는 사찰이다.
이 곳을 연구 중인 연구원은 지난 2016년 1차 발굴조사에서, 신라 제34대 임금인 효성왕(재위 737∼742)을 위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완성 무덤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또 2017년 통일신라시대 십이지신상 건물터와 장대석으로 쌓은 남북 57.5m·동서 17.5m인 대형 기단 건물터, 회랑, 담장, 배수로, 도로, 연못이 확인됐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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