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월29일 오전 0시36분에 오사카 리갈 로얄 호텔에서 만나 한러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악수하고 있다./청와대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지각 대장’으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9일 진행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 예정보다 2시간가량 지각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러 정상회담은 당초 G20 정상만찬 및 문화공연을 마친 28일 오후 10시45분에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후 9시30분에 끝날 예정이던 문화공연이 1시간가량 길어졌다. 

이 때문에 한‧러 정상회담 직전인 10시15분으로 예정됐던 프‧러 정상회담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40분 늦게 나타나면서, 이 회담 역시 30분간 일정을 넘겨 자정을 넘긴 0시20분까지 85분간 이어졌다. 

연쇄적으로 한‧러 정상의 만남도 뒤로 미뤄지며 결국 자정을 넘겨 예정일보다 하루 뒤 회담을 치른 셈이 됐다. 이 바람에 문 대통령은 숙소에 2시간 가까이 대기하며 러시아측 연락을 기다렸다. 문 대통령은 0시25분경 숙소를 출발, 러시아 측 숙소에 마련된 회담장으로 이동했다.

한‧러 정상회담은 예정보다 111분이나 늦은 29일 오전 0시36분에야 시작됐다. ‘심야회담’이 사상 초유 ‘새벽회담’으로 뒤바뀐 것이다. 한‧러 정상회담은 예정됐던 40분을 넘긴 53분간 진행됐고, 8분간 단독회담도 추가됐다. 회담은 새벽 1시29분 종료됐다. 

한‧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지난 4월 북·러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을 때 김 위원장이 “대북 안전보장이 핵심이며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29일 새벽 오사카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단독회담에서 북한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한·러 정상은 이날 새벽 0시36분부터 45분간의 확대회담에 이어 통역만 배석한 가운데 8분간 단독회담을 했다.

‘4월 북·러 정상회담 당시 대화 내용은 이미 우리 정부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물론 4월 회담 이후 개략적인 내용을 저희가 듣긴 했다”면서도 “푸틴 대통령의 입으로 김정은과 나눈 얘기를 생생하게 문 대통령에게 전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런 골자의 다른 내용도 있었지만, 상세히 밝히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남북대화를 위한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최근 대북 인도적 지원을 환영하고 지지한다고 밝혔고,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북·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대화를 통한 완전한 비핵화 달성 원칙과 이를 위한 남북 및 미·북 대화의 진전 필요성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밝힌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에 큰 도움이 되며 앞으로 러시아와 긴말한 소통과 협력을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친서 교환으로 대화의 모멘텀이 다시 높아졌다"며 "이런 긍정적인 모멘텀을 살릴 수 있도록 러시아·중국과 함께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진전과 대북제재 해제 등 여건이 조성돼 남·북·러 3각 협력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길 희망한다"며 "철도·가스·전력 분야에서 양국 간 공동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도 했다.

또 양 정상은 올해 2월에 서명된 '9개 다리 행동계획'이 체계적으로 이행돼 구체적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또 두 사람은 지난 20일 한·러 서비스·투자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가 공식 선언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이를 토대로 상품 분야를 포괄하는 한·유라시아경제연합(EAEU) FTA 논의도 추진력을 얻게 되길 함께 기대했다. 

아울러 양 정상은 러시아의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프로젝트에 필요한 쇄빙선 건조를 위해 한국 조선사들과 협력이 진행되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향후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자는데도 의견을 같이했다고 한 부대변인은 전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가급적 조속히 방한해 다양한 분야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고, 푸틴 대통령은 "과거 방한 시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있기에 적극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지각 사태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는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도 “양자 간 예의를 지키지 못했다는 ‘결례’의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전체적인 일정이 순연돼 정상회담도 늦춰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다른 국가 정상들과의 회담에도 늦는 사례가 다반서여서 ‘지각 대장’으로 불린다.  2014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회담에는 4시간을 늦었고, 2016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는 2시간 늦게 나타났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싱가포르 아세안(ASEAN) 정상회의 계기 한‧러 정상회담에서는 당시 예정된 시각보다 5분 일찍 푸틴 대통령이 회담장에 도착해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