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판문점에서 북미 정상의 53분간 회담이 성사된 뒤 비핵화 실무협상이 시작될 전망이다. 미국측이 먼저 밝힌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포괄적 협상’ 기조에 따라 비건 대표의 발언으로 알려진 ‘핵동결’과 이에 따른 상응조치가 테이블에 올려질 전망이다.

북한의 핵동결에 대한 미국의 조치는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사실상 남북미 간 종전선언’에 따른 평양과 워싱턴의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가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지난 30일 남북미 정상이 경호없이 양복 차림으로 판문점에서 회동한 것에 대해 문 대통령은 “적대관계 종식”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의 북핵 실무협상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달 30일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장관의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의 완전한 동결”이라고 말했다고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또 비건 대표는 이와 관련해 인도주의적 지원과 인적교류 확대, 평양과 워싱턴의 연락사무소 설치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비건 대표는 “우리는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제재를 해제하는데 아무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도 협상을 단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즉 북한이 주장해온 동시적‧단계적 행동 원칙을 일부 수용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같은 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 이후 기자들 앞에서 “포괄적으로 좋은 합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부적인 것들을 조율해나갈 것”이라며 “속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제재와 관련해 “언젠가 해제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언젠가는 해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협상을 진행하다보면 해제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일단 미국의 입장이 한층 유연해진 것은 핵동결을 협상의 입구로 놓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지난 2월 하노이회담 결렬 이유였던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 알파나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반출 등보다 협상 초기 문턱을 낮춘 것이다. 

대신 ‘동결’ 사항에 핵은 물론 WMD를 모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비핵화 개념 정의와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를 북측에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 제기됐던 ‘핵동결이 최종 목표’에 대한 우려를 비건 대표도 직접 부인한 만큼 핵동결과 로드맵 도출로 북한과 접점을 찾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협상을 시작하는 조건으로 북한에 인도적 지원과 연락사무소 설치를 이행할 계획이다. 연락사무소 설치로 종전선언에 상응하는 새로운 관계 수립을 실현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하노이회담 때에도 미국이 제안했던 것으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도중 기자들에게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를 오늘 발표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그렇게 되면 좋을 것 같다. 양쪽에 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바 있다.

이 같은 미국의 구상은 1차 북미정상회담 때 합의한 사항을 실천해나간다는 명분도 살린 셈이다. 앞서 비건 대표는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합의사항을 동시적‧병행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 북측과 건설적 논의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핵동결’이 북한의 현 상태를 유지시켜 결국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먼저 나온다. 특히 대선 국면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완전한 비핵화 대신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는 등 상황 관리에 들어갔다는 시각이 많다.

하노이회담 때 일부 제재 완화를 주장했던 북한이 미국의 이 같은 협상 조건을 수용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비건 대표의 말은 인도적 지원만으로 동결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미인데, 제재 완화를 포함하지 않은 개념이라 북·미가 이 정도로 급물살을 타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다만 북한이 이에 만족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